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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Apr 29. 2022

기적은 있을까? 임신 17주 차 이르러서야 '임밍아웃'

태교일기 [32w3d] 딱풀이에게 보내는 8번째 편지 (D-43)

2021년 10월 15일 임테기 두 줄 확인
2021년 10월 23일 피검사로 임신 확인
2021년 10월 30일 첫 초음파 확인
2021년 11월 6일 우렁찬 심장박동 수 확인

그러고도 계속 믿기 어려웠어. 엄마의 전적이 여간 화려했던 게 아니거든. 또 실망할지 모른다는 자기 방어와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내 안에서 공존한 채 몇 달을 보냈어.

난임 병원에서 분만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이제는 일반 임산부와 똑같은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도 임신을 했다고 말하기가 주저되었. 괜히 말했다 번복하게 될까 봐 두려워 또다시 한 달을 흘려보내고 불러오는 배를 보니 제야 좀 실감이 되었. 아, 내가 임신을 하긴 했구나. 누가 볼세라 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고 다니던 분홍색 사원 줄을 그제야 자랑스럽게 목에 걸었.

2년 넘게 이어졌던 지난했던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결혼 후 6년 동안 겪은 5번의 임신과 5번의 유산 후 비자발적 딩크족의 삶을 원했던 엄마와 자녀 입양을 원했던 아빠는 2021년 가을 기적처럼 새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었어.



임신 17주 차에 이르러서야 엄마는 '임밍아웃'이란 걸 할 수 있었어. 그간 조심스러워 지인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러나 한편으로 간절히 말하고 싶었던 기쁨을 활자에 담아 인스타를 통해 전했어. 인스타로 연결된 지인들이 속한 단톡방에서 축하 인사가 쏟아졌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는 지인이나 작가님들도 계셨어. 그들 모두가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고 감격한 모습이었어. 그들의 진심이 마의 마음속 어딘가를 또 톡 하고 건드렸는지 또 주책맞게 눈물이 차올랐어.


엄마는 사실 그때 두 번째 책 《글쓰기에 진심입니다》의 출간을 앞두고 있었어. 책 디자인 검토가 한창일 때 찾아온 네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완전히 털어내고 내려놓았을 때가 비로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라는 뜻까? 엄마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마음의 그릇을 키워 아이를 맞이할 수 있도록 네가 기다려 준 것일까? 비자발적 타의적 딩크족의 삶을 받아들이겠노라 쓴 에필로그가 떠올라 한동안 머쓱하기도 했어.

《글쓰기에 진심입니다》를 읽고 비로소 엄마가 그렇게 아팠다는 걸 알게 되어 미안하다는 친구도 있었어. 본인도 사실 지금의 아이를 갖기 전 시험관 시술에 두 차례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고, 당시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힘든 것 같아 남들을 미워했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해온 친구도 있었어. 그녀는 엄마가 쓴 글을 읽고 그랬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말했어.

엄마는 그녀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열 번이든 아프고 힘든 건 마찬가지이니까. 그녀도 엄마처럼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거야. 대인관계도 틀어지고 괜히 다 밉고 자기 자신만 불행한 것 같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엄마 역시 그랬거든. 왜 다들 행복한 건지 억울하기도 했어. 어두운 터널 속에 있던 그 시기에 들려온 출산 소식에는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어. 더 안타까운 것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도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기 어려웠어. 너무 아파서 서로 나눌 수조차 없던 마음을 부여잡고 각자 고슴도치가 되어 땅굴만 팠던 그 시기를 엄마도 엄마의 친구도 잘 이겨내서 다행이지?

자연임신이라니.. 세상에 기적이란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일었어. 엄마는 종교도 없고 이성적이라 자부하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어.

참, 너의 태명이 왜 딱풀이 이었는지 아니? 딱풀처럼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붙어있다 만나길 바라며 붙인 태명이야.

딱풀아~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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