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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Apr 30. 2022

임신 중기, 뒤늦은 졸음의 습격 그리고 생산성 저하

태교일기 [32w4d] 딱풀이에게 보내는 9번째 편지 (D-42)

밥을 먹다가도 졸음이 쏟아졌다.

자도 자도 잠이 쏟아지고 하루 종일 나른했다.

먹는 족족 토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렸다.


임산부들이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를 잠시만 둘러보아도 이런 식의 간증 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어. 임신으로 호르몬과 생체리듬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겠지. 이들의 고충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가 임신 초기라는 것이었어. 임신을 확인하고 엄마는 곧 맞닥뜨릴 이런 증상들의 습격을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


입덧 캔디로 유명한 포지타노 레몬사탕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여차하면 결재할 태세로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들의 습격은 없었어. 참을 수 없는 졸음도, 일상을 마비시키는 입덧도, 엄마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어. 그저 속이 가끔 쓰리거나 체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원래도 소화력이 별로인 엄가 평생 느끼며 살아온 불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도였고 눈에 띄는 입덧 현상도 없었어.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늦은 시간까지 또렷한 정신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고, 여전한 식욕으로 가리지 않고 뭐든 맛있게 먹었어. 다른 임산부들과 다르게 삶의 질은 좋았지만, 임신을 한 게 맞을까 싶은 의심은 시도 때도 없이 엄습했어.


출처: 포지타노 레몬사탕 쇼핑몰 이미지컷


이렇다 할 이벤트 없 임신 초기를 보내고 임신 중기에 들어섰어. 임신 중기는 임신 기간 중 가장 컨디션이 좋다는 시기인데, 엄마는 그제야 들이닥친 졸음에 일격을 당했어.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열병 삶의 축을 뒤흔들듯, 이 무지막지한 졸음은 엄마가 꾸준히 이어오던 일상의 루틴을 무너뜨렸어.


딱풀이 아빠: 유미양 몇 시간 잤는 줄 알고 있나?

딱풀이 엄마: 몰라~ 나 많이 잤지?

딱풀이 아빠: 10시간은 잤다.

딱풀이 엄마: 아 진짜? 그렇게 많이 잤나?

딱풀이 아빠: 응 완전 딥슬립 하던데


하아~ 10시간이라니? 재택근무이지만 어쨌든 회사 일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8-5제 재택근무가 끝나고 바로 잠들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신기록을 연거푸 쏟아냈던 거지. 회사 일 외에 뭔가를 할만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하루에 10페이지씩 읽고 감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1일 10쪽 읽기를 이어가는 것조차 엄청난 도전이 되었어. 겨우 10페이지일 뿐인데. 당시 엄마는 다음에 쓸 책을 기획해볼 참이었는데 쏟아지는 잠 덕분에 이 또한 매일 제자리걸음이었어.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나른하게 만드는 이 졸음이 반갑기도 했어. 쏟아지는 잠이 엄마의 몸 어딘가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호 같았거든. 잠에 취하면 취할수록 네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 게다가 졸리면 잘 수 있고 배고프면 먹을 수 있다는 게 별일 아니어 보이겠지만 사실은 대단한 행운이야.


출처: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샷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에는 후대에 파주의 유관순이라 불리기도 하는 임명애 선생이란 분이 나오셔. 감독과 관객 대부분 8호실에 빼곡하게 들어선 여성들 중 유관순 열사에게 집중했지만, 엄마의 기억에는 임명애 선생이 더 진하게 남았어. 임신한 몸으로 갇혀있던 그녀는 자고 싶어도 누울 수 없었고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어.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태중의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낸 그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임신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건 분명해. 하지만 이는 관점에 따라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어. 우리는 더 중요한 다른 생산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으니 꼭 생산성이 떨어졌다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코로나 확진자가 몇십만 명에 다다르던 시기를 잘 버텨낸 것, 축하와 축복해 주시는 마음들을 감사히 받아 너와 나의 건강을 지켜낸 것, 엄마가 올해 이뤄낸 성과들이야. 비록 회사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는 놓쳤지만 꽤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2022년을 기억할 수 있겠지. 어쨌거나 포지타노 레몬사탕의 입덧 완화 효과는 끝내 확인할 길이 요원할 듯싶어. 장바구니에서도 이제 그만 비워야겠. 사실 레몬맛 사탕은 엄마 취향이 아니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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