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들이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를 잠시만 둘러보아도 이런 식의 간증 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어. 임신으로 호르몬과 생체리듬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겠지. 이들의 고충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가 임신 초기라는 것이었어. 임신을 확인하고 엄마는 곧 맞닥뜨릴 이런 증상들의 습격을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
입덧 캔디로 유명한 포지타노 레몬사탕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여차하면 결재할 태세로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들의 습격은 없었어. 참을 수 없는 졸음도, 일상을 마비시키는 입덧도, 엄마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어. 그저 속이 가끔 쓰리거나 체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원래도 소화력이 별로인 엄마가 평생 느끼며 살아온 불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도였고 눈에 띄는 입덧 현상도 없었어.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늦은 시간까지도또렷한 정신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고, 여전한 식욕으로 가리지 않고 뭐든 맛있게 먹었어. 다른 임산부들과 다르게 삶의 질은 좋았지만, 임신을 한 게 맞을까 싶은 의심은 시도 때도 없이 엄습했어.
출처: 포지타노 레몬사탕 쇼핑몰 이미지컷
이렇다 할 이벤트 없이 임신 초기를 보내고 임신 중기에 들어섰어. 임신 중기는 임신 기간 중 가장 컨디션이 좋다는 시기인데, 엄마는 그제야 들이닥친 졸음에 일격을 당했어.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열병이 삶의 축을 뒤흔들듯, 이 무지막지한 졸음은 엄마가 꾸준히 이어오던 일상의 루틴을무너뜨렸어.
딱풀이 아빠: 유미양 몇 시간 잤는 줄 알고 있나?
딱풀이 엄마: 몰라~ 나 많이 잤지?
딱풀이 아빠: 10시간은 잤다.
딱풀이 엄마: 아 진짜? 그렇게 많이 잤나?
딱풀이 아빠: 응 완전 딥슬립 하던데
하아~ 10시간이라니? 재택근무이지만 어쨌든 회사 일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8-5제 재택근무가 끝나고 바로 잠들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신기록을 연거푸 쏟아냈던 거지. 회사 일 외에 뭔가를 할만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하루에 10페이지씩 읽고 감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1일 10쪽 읽기를 이어가는 것조차 엄청난 도전이 되었어. 겨우 10페이지일 뿐인데. 당시 엄마는 다음에 쓸 책을 기획해볼 참이었는데 쏟아지는 잠 덕분에 이 또한 매일 제자리걸음이었어.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나른하게 만드는 이 졸음이 반갑기도 했어. 쏟아지는 잠이 엄마의 몸 어딘가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호 같았거든. 잠에 취하면 취할수록 네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 게다가 졸리면 잘 수 있고 배고프면 먹을 수 있다는 게 별일 아니어 보이겠지만 사실은 대단한 행운이야.
출처: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샷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에는 후대에 파주의 유관순이라 불리기도 하는 임명애 선생이란 분이 나오셔. 감독과 관객 대부분이 8호실에 빼곡하게 들어선 여성들 중 유관순 열사에게 집중했지만, 엄마의 기억에는 임명애 선생이 더 진하게 남았어. 임신한 몸으로 갇혀있던 그녀는 자고 싶어도 누울 수 없었고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어.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태중의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낸 그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임신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건 분명해. 하지만 이는 관점에 따라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어. 우리는 더 중요한 다른 생산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으니 꼭 생산성이 떨어졌다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코로나 확진자가 몇십만 명에 다다르던 시기를 잘 버텨낸 것, 축하와 축복해 주시는 마음들을 감사히 받아 너와 나의 건강을 지켜낸 것, 엄마가 올해 이뤄낸 성과들이야. 비록 회사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는 놓쳤지만 꽤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2022년을 기억할 수 있겠지. 어쨌거나 포지타노 레몬사탕의 입덧 완화 효과는 끝내 확인할 길이 요원할 듯싶어. 장바구니에서도 이제 그만 비워야겠다. 사실 레몬맛 사탕은 엄마 취향이 아니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