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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Apr 24. 2022

임신 6번 만에 듣게 된 심장 소리

태교일기 [31w6d] 딱풀이에게 보내는 4번째 편지 (D-47)

딱풀아~

4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불린단다. 봄에 뿌린 씨앗에 1년 동안 공들인 수고가 드디어 결실을 맺는 시기이기 때문이야. 엄마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각종 채소나 과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 그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어. 아빠를 만난 덕분에 귀농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통해 1년 내내 3일 이상 집을 비우지 못하는 농부의 바쁜 삶에 대해 그제야 조금 알게 되었지. 시골에는 모든 계절마다 농부의 손길을 요하는 일이 가득하지만, 가을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바쁜 계절이야. 귀농 농부의 둘째 아들인 아빠 역시 덩달아 매년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고, 작년 가을도 다르지 않았어.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청송에 내려갔던 날 엄마는 혼자 병원 진료를 다녀왔어. 새벽에 있었던 온라인 회의를 마치고 나니 빠듯한 시간에 제대로 아침도 챙겨 먹지 못하고 두유 하나를 챙겨서 집을 나섰어. 아빠가 차를 운전해 시골에 가셨기 때문에 엄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어. 당시 엄마가 다니던 병원까지는 거리는 가깝지만 대중교통편은 애매한 편이라 아빠는 택시를 타고 다녀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지.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기롭게 버스에 올랐어.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부리다 보니 창밖 풍경이 점점 낯설어지더라. 병원과는 점점 멀어지는 다른 버스에 올랐던 거야.

벨을 누르고 다음 정류장에서 황급하게 내렸지만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했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로에는 빈 택시도 잘 보이지 않았고 앱 예약도 잘되지 않았어. 덥지도 않은 날씨였는데 엄마의 이마와 겨드랑이에는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어. 낯선 골목을 한참 헤매다 겨우 예약한 택시를 타고 예약시간보다 30분 늦게 병원에 도착했어. 택시를 기다리며 병원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덕분에 늦었지만 접수를 해주셨고, 다행히 의사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어.

마지막 차례로 엄마의 이름이 불리었고 긴장된 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어. 1주일을 어떻게 보냈냐는 선생님의 인사에 아무렇지도 않았노라 답하고 초음파 검사 의자에 앉았어. 평소 늘 차분한 모습이셨던 의사 선생님이 고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 "보이네. 심장 뛰는 거 보이죠?" 엄마는 대체 어디를 봐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어. "네? 어디요? 어디가 심장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마우스 커서를 가져가듯 화살표를 움직여 하얀 점을 가리키셨어. "여가 밝은 흰 점이 깜빡이잖아요. 가만있어봐. 들려줄게요." 쿵쾅쿵쾅쿵쾅~~~ "어머 선생님, 저 임신 6번 만에 이렇게 큰 심장 소리 처음 들어요" 엄마는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느낄 수 있었어.



활자로만 접하던 '벅찬 감동'이나 '환희의 눈물'과 같은 단어가 어떤 감정인지 엄마는 그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어. 여전히 작은 흰 점에 불과한 네가, 그보다 더 작은 흰 점인 너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어. 불안해하지 말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너의 그 강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엄마는 이전처럼 극도의 불안과 떨림을 느끼지 않았어. 매일매일 시간에 맞춰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주신 유산 방지 약을 먹고, 질정을 넣고, 주사를 맞으면서도 그토록 덤덤한 내 마음이 신기할 정도였어. 딱풀이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담아 보내 응원의 메시지 덕분이었겠지? 고맙고 사랑해 딱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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