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풀아~ 아빠의 설명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앞 꽃 가게 사장님은 늘 합리적인 가격에 풍성하고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주신다고 해. 엄마는 지금 집에서 6년이나 살면서도 한 번을 만나 뵙지 못한 분이신데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걸까? 그건 엄마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빠가 자주 애용하고 있어, 이제는 얼추 단골집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거야.
아빠가 꽃집에 들어가 누구에게 선물할 것이고 어떤 용도인지 설명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엄마는 미소가 지어져. 남자에게 받는 꽃 선물은 그가 그런 수줍고 멋쩍은 과정을 감내한 정성이 더해져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 딱풀이도 나중에 크면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이런 꽃 선물을 받게 되겠지?
지난 엄마의 생일날, 칼퇴근을 하고 서둘러 귀가한 아빠가 부지런히 챙겨준 생일 저녁상은 꽤 그럴싸했어. 아빠는 쟁여두었던 청정원표 레토르 미역국 한 봉을 냄비에 푹 쏟아 넣어 팔팔 끓여 냈어. 동시에 그 전날 미리 장을 봐 둔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어. 아, 그래서 어제 퇴근길에 마트에 들렀던 거였나? 아빠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야. 아빠가 이렇게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나 싶어서 새삼스럽게 느껴졌어.
아빠가 주방과 거실을 분주하게 오가며 생일상을 차리는 동안 그럼 엄마는 뭘 하고 있었을까? 엄마는 아빠가 사다 준 꽃다발의 향을 한껏 맡고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어. 엄마가 출간한 책 《글쓰기에 진심입니다》와 딱풀이, 너의 초음파 사진도 가져와 이리저리 괜한 설정샷도 남겼어.
작년부터 지금까지 참 감사한 일이 많았어. 부서 이동, 책 출간,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임신까지... 그 과정에서 아빠는 엄마가 너무 출렁이지 않도록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주었어. 생각해 보면 네 아빠는 늘 그런 사람이었어.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고 늘 한결같은 사람. 엄마가 저음부터 고음까지 여러 음계를 화려하게 넘나들다가도 언제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도'를 유지해 주는 사람.
더위도 많이 타는 아빠가 최고의 스테이크를 구워내겠다며 인덕션 앞에 서서 땀을 한바탕 쏟아냈어. 본인이 계획했던 생일상이 얼추 차려졌는지 그 전날 엄마가 회사에서 받아온 케이크를 얼른 꺼내왔어. 그러고는 내게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신호를 보냈어.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이라면 요리조리 앵글을 맞춰가며 사진으로 먼저 담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한 배려였지.
엄마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다정한 이 사람은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다정할까? 딱풀이, 네가 태어나도 지금처럼 한결같을까? 사람 일은 모를 일이라지만, 연애 2년과 결혼 6년, 총 8년 동안 변함없으니 조금 더 기대해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 온전히 엄마에게만 향했던 사랑과 배려는 이제 너에게 향하겠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역시 흐뭇할 테고. 매일 출근 전 볼록한 엄마 배를 쓰다듬으며 "딱풀이 오늘도 잘 놀고 있어요. 아빠는 회사 다녀올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니 네가 태어나면 오죽할까 싶어. 아마도 자타 공인 딸바보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