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작가 Sep 30. 2022

뜸도 들이지 않고 밥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며칠 전부터 오른쪽 콧구멍 안쪽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다 큰 성인이 콧구멍 안쪽에 손을 불쑥 밀어 넣기에는 부끄러우니 콧구멍 주위를 연신 건드렸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코를 만지작만지작, 수유를 하면서도 만지작만지작. 밖에서 가하는 이런 타격으로 이질감을 자아내는 무언가가 휙 하고 떨어져 나가길 바랐지만 역부족이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하니 나도 모르게 약지를 훅 넣어 재빠르게 코 안쪽 벽을 훑게 되었다. 딱딱하게 굳은 상처가  느껴졌다. 참지 못하고 떼어내고 그제야 휴지를 찾았다. 휴지 끝으로 코 내벽을 닦아내니 피가 묻어났다. 상처는 결국 또 제대로 아물지 못한 채 생채기가 났다.


무한 반복의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피가 멎고, 딱지가 지고, 새 살이 돋아 자리를 잡고, 그 위를 덥고 있던 딱지가 자연스럽게 떼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만 한다. 아무리 조바심을 내도 소용없는 일이다. 빠른 결과를 바라며 중간 과정을 생략해 봐야 결국 속도만 늦추는 꼴이 돼버린다. 딱지 안쪽에 새살이 차올라 스스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했던 일이 비단 이번뿐이었겠나. 나는 그동안 축적의 시간 없이 멋진 피날레만 바랐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가 '엄마'라는 한 단어를 발화하기 위해서는 무려 2만 번을 들어야 한다고들 한다. 2만 번이라니. 쉽게 피부로 와닿지도 않는 숫자이다. 100일이 지난 아이는 오늘도 그 작은 입술을 움직여가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아 어 이 오 등 모음의 나열 같기도 하고, 조금 거친 숨소리 같기도 하다. 이는 녀석이 첫 단어를 발화하는 순간까지 쉼 없이 이어질 시도이다.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소리가 쌓이고 쌓여 축적의 시간이 충분해졌을 때 비로소 '엄마'라는 단어를 내게 들려줄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상체를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 배와 허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음을 자신이 상체를 움직일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 걸까?


아이의 모든 시도는 실패이면서 성공이다. 당연하지만 아이는 매번 '엄마'라는 단어를 완전히 말하지도 상체를 완전히 들어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아가는 중이다. 과정 중에 결과를 먼저 바라다 일을 어그러트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가을은 공모전의 계절이다. 몇 해 전부터 관심은 있으면서도 정작 공모전에 걸맞은 글을 쓰지는 않았다. 과정 없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조바심이 내게서 쓰기의 단계를 앗아갔다. 뜸도 들이지 않고 밥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밥솥 앞에서 종종거리며 공모전 소식만 수집하다 끝나버렸다. 이 짧은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어김없이 코에 또 손이 갔다. 긁어 부스럼이 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적확하겠다.


언제까지 설익은 밥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칙칙 칙칙~ 결혼하면서 구입했던 쿠쿠 밥솥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자꾸만 급해지는 내 마음과 무관하게 이 밥솥만큼은 지금껏 실망스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욕심 많은 여우의 '빈정대기'와 '자기 합리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