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40대를 위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읽고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는 첫 번째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고,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 갖는 로맨틱하면서도 쓸쓸한 정서가 갖는 소구력이 상당하여 어느 정도의 팬층도 획득한 듯 보인다. 이 단편집에서 포터는 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앨리스 먼로(Alice Munro)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심리에 대한 정확하고도 서늘한 묘사를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사랑을 받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양가적인 -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 관계 맺기와 인간소외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그만의 문체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후 발표한 첫 장편 <In Between Days>가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아 발생한 물리적 시간의 간극 탓에, 그의 두 번째 단편집 <The Disappeared>가 가진 냉정할 뿐 아니라 냉소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정서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독자들이 꽤 있을 것 같다. 사실 <In Between Days>에서부터 포터는 본격적으로 가족 내부의 균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텍사스 휴스턴을 배경으로 이혼한 부부와 그들의 두 자녀가 겪는 심리적 위기양상을 미시적으로 치밀하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어쩌면 포터는 두 번째 단편집의 근간을 획득하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장편에서 물리적으로 어떤 인물이 사라지는 사건이 소설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두 번째 단편집 전반에 걸쳐 흐르는 주제의식의 단초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첫 단편집이 2010년에 나왔고 이 두 번째 단편집이 2023년에 나왔으니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앤드루 포터는 40대가 되었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낳았다. 그는 주변에서 소재와 주제의식을 가져와 다양하게 변주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니 그가 관찰하고 내재화한 대상이 달라졌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비슷한 패턴을 공유한다.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 살고, 담배와 와인을 즐기며, 아침보다는 밤을 사랑하고, 쉽게 떠나지 못하며, 떠나간 것을 쉽게 잊지 못한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결혼에 실패했다. 아이를 낳았거나, 낳지 않았거나, 아이와의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 커리어에 성공하지 못했거나, 커리어를 시작하지도 못했거나, 출산과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엉켜버렸다. 포터는 모든 인물들에게 이러한 기본적인 설정을 공통적으로 깔아 놓은 후, 주인공이 관찰하는 대상이 주인공과 공명하는 찰나의 순간에 주목한다. 주인공을 실제로 떠나는 사람, 주인공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 아무리 친해도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 주인공과 다르게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주인공 주변에서 배회한다. 이 단편집의 한국어 제목 <사라진 것들>이 상징하는 바를 주인공이 관찰하는 사람들, 혹은 주인공이 스쳐지나 온 공간과 시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세월의 부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40대에 도착해 버린 주인공의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별히 불우하지도, 그렇다고 금수저를 꽉 물고 태어나지도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그때 그때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듯 살았다. 분명한 목적의식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크게 낭비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났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가 태어났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40대가 되었고, 이제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데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아이는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주변에 남아 있는 이들은 아주 쉽게 떠나간다. 포터가 그리는 인물들의 서사는, 텍사스라는 배경을 제거한다면 40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모두 한번쯤 겪어보았을 이야기다. 이 단편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지인에게 추천했다. 누군가는 이 단편집을 "다큐멘터리"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읽는 동안 부모님을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단편집 전반을 걸쳐 흐르는 하나의 큰 주제의식은 '육아로 인한 커리어의 망가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이 주제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망가져가고 있는데, 나의 부모님은 어떠했을까? 생각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지인은 <벌>이 너무 읽기 힘들다고 했다. 이혼한 사람이 도저히 읽어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그 심리를 잔인하게 파헤쳤기 때문일 것이다. 포터는 40대에 접어든 이들이 겪는 다양한 형태의 중년의 위기에 대한 답을 간단히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위기의 전개 양상을 담담히 전개할 뿐이다. 그 끝은 항상 '답 없음'이다. 우리가 흔히 "노답이네"라고 칭얼거릴 때의 그 답 없음. 어쩌면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이지만 쉽게 인정하기 힘든 그 사실을, 포터는 미시적인 심리 묘사를 치밀하게 직조하는 과정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낸다. 독자는 그의 유려한 문체 앞에 그저 벌거벗은 것 같은 느낌으로 서 있게 된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앞서야 하는 것은, 그저 이렇게 되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포터의 새 단편집은 그러한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절망적인 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