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권분자
마(魔)가 낀 날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신기하게도 아침부터 꼬이는 날은 계속 꼬였다.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정말이지 끝까지 꼬이고 꼬였다. 이런 날은 나쁜 기운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털어내기에도 벅찼다.
집 근처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일찍 외출준비를 마치고나니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며칠 전 사다놓은 예쁜 잔에 커피를 내렸다. 따끈한 커피 맛을 음미하는데? 아뿔싸! 손에서 잔이 미끄러졌다. 떨어진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흩어진 조각은 유리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징조 같았다.
깨트려도 눈치 볼 사람은 없었지만, 잔이 너무 아까웠다. 씁쓸한 마음으로 모임에 나가서일까. 한 친구가 자꾸만 내 말에 예민하게 꼬리를 물었다. 그녀는 뜻 없는 말이라고 변명을 했지만, 나로서는 찔러대는 가시 같았다. 늘 친하게 지냈던 그녀와 나는 날 선 말만 주고받다가 엄청 어색해진 상태로 헤어졌다.
그래! 기계도 오작동을 일으키는데 인간이라면 말해 뭣하겠나!
나는 툴툴 털어내고 집으로 들어가다가 길에서 이웃을 만났다. 이웃은 나 몰래 투자한 돈이 크게 불었다며 싱글벙글 즐거워했다. 늘 정보를 공유해오던 사이였는데, 이번에는 혼자 해봤다고 자랑 아닌, 의도된 찌르기처럼 말했다. 평소 그녀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개으치는 않았다.
저녁 무렵엔 딸이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결혼을 생각하던 남자친구와는 끝날 것 같다고, 잘 맞으면서도 간혹 맞춰지지 않는 아귀가 있더라고…,
한숨만 내쉬던 나는 심란함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이웃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조언인지 훈수인지 모를 말에 또 한 번 상처받고 말았다.
모두들 나의 X같은 하루를 잘도 꿰뚫었다. 정말이지 꼬이는 날은 끝까지 꼬였다. 달력에 빨간 X를 그어 넣고 싶은 날이었고, 감정의 회로가 다 타버린 날이었다.
그래! 마음이 갈라지고 찢겼을 땐 나를 기계처럼 리셋해보는 거야, 역시 치맥이 최고겠지?
뇌의 회로를 잠시 끊고, 마음에 덮개를 덮는 밤…,
세상이 나를 향해 등을 돌릴 때, 내 마음은 나 자신에게 기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