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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Apr 03. 2020

공허함을 달래는 법

껌 5개를 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얇아진 소매 끝에 닿는 밤바람이 아직은 쌀쌀하다 싶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친했던 친구 하나는 매일 치킨을 먹는 게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비싼 학비에 용돈까지 타 쓰는 입장이었으니 그 말을 이해 못 할 건 아녔지만, 성공을 향한 포부라기엔 다소 귀엽게 여겨졌다. 어느새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유달리 힘든 날 지친 육신에 대한 보상으로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무리되지 않는 월급을 받게 되었다. 늦은 저녁 성황리에 영업 중인 치킨집 앞을 지날 때면 그 말이 떠오르곤 했는데, 잔뜩 소진된 하루 끝에 심신을 채워줄 존재가 무엇인지 그는 이미 알았던 거 같다.



내게 있어 그 껌이었다. 2년 전부터 불안하거나 가라앉는 혹은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기분이 들 때면, 껌을 질근질근 씹 습관이 생겼다. 지만 오늘 텅 빈 길을 걸으며, 껌 4개를 씹었지만 단물만 먹고 뱉어서인지 어떤 위로도 족감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을   있을까. 마지막 남은 하나의 껍질을 벗기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답을 알 수가 없다.


쉬이 잠들 거 같지 않아 오래간만에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늦은 밤 배송된 택배 상자의 배를 갈라 배를 채웠다. 포만감에 어찌어찌 잠들었고 아침이 왔지만 전날의 운이 씹다 버린 껌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하루가 길 것 같다. 약속시간 까지는 아직 반나절이나 남았다. 그간 이렇게 바닥에 붙어만 있을 것인가. 집이 더럽잖아, 신분증을 찾아와야 하잖아, 엄마가 알아봐 달라 한 일이 있잖아, 홈트레이닝하기로 했잖아. 마음속의 외침에도 아픈 손목으로 휴대폰만 쥔 채 몸을 일으킬 생각이 없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애써 느릿한 움직임을 만들어냈으나, 그것은 냉장고 문을 열고, 찬장을 열어 익숙한 내용물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새로울 게 없는데 내심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 마냥 반복하게 된다. 약속을 취소하고 양념치킨 한 마리를 시켜 포만감에 취해 잠들고 싶다. 지금 이 공간 나라는 사람의 음식을 향한 욕구와 무기력감, 우울감으로 가득 차 있다. 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현기증이 든다. 잠깐 이마를 짚고 섰다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각종 덩어리들이 들러붙몸이 거워 보인다.



날이 밝다. 문을 나서면 나아질까 했는데 터벅터벅 내딛 때마다 힘이 빠진다. 할 일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냈을 뿐인데 벌써 체력소모가 크다. 점심때가 되어 김밥 한 줄을 먹었지만 팔다리의 에너지는 채워지지 않는다. 걷다가 쓰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든다. 더 걸으면 돌아올 힘이 없을 것 같아 집가기로 한다.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는 중, 벚꽃과 푸른 나무들이 섞인 샛길 발견했다. 자취방에서 도보로 10분이 안 되는 거리이지만 이곳은 내게 낯선 풍경이다. 가야 할 길이 아닌 그 길로 들어서 몇 발자국 걷다 멈춰 선다. 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햇빛 아래 개한 벚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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