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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Dec 04. 2021

로또 5등에 당첨됐습니다.

5000원으로 한 주간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생애 처음으로 로또 한 장을 샀고, 5등에 당첨됐다. 작게나마 당첨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터인데, 심사가 뒤틀린 나는 오히려 약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적어도 3등은 돼야 하는 거 아냐. 최근 내 불운에 대한 대가치곤 너무 작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운 총량의 법칙, 불행 뒤엔 행운이.라는 말도 있는데 5000원은 너무 짜잖아. 나쁜 일 뒤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주입된 관념을 순진하게 믿으며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것이 우스워졌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심리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행운은 참 얄궂다. 불행은 하필, 그때, 그 순간, 모든 우연이 착착 맞아떨어지면서 도미노 쓰러지듯 넘어져 고개를 든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데, 왜 행운은 가위바위보와 같이 이기고 지는 1/3의 확률도 내 편이 아닐 때가 많고, 서울 아파트 청약, 복권 당첨과 같은 끝판왕은 전래동화에서나 나오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불행에는 전조증상이 있었다. 그 길로 가는 길목에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처럼 복선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내 시야가 좁아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 알았더라도 안일하게 흐린 눈 했을 뿐. 만약 그때 그 연쇄사슬 중 하나만 끊었더라면, 지금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그때 머뭇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클릭을 했더라면.  지금 내 옆에 있지 않을까. 나는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이리도 고통받지 않지 않았을까. 왜 모든 우연이 그 길로 이끌었을까. 의미 없는 물음임을, 스스로를 더 고통받게 하는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


라는 말을 인정하고 나서, 스스로를 향해 당기던 활시위를 멈췄다. 대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아 무력해졌다. 예전엔 노력하면 내 삶을 바꿀 수 있을 거란 희망 하나로 무턱대고 끝없어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남들한테 뒤쳐질까 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앞서 걸었는데 미끄러져 넘어진 기분이다. 그 새 다른 사람들은 나를 뒤로 하고 저만치 앞서가 고지에 올랐거나, 편한 길로 빠졌는데, 나는 험한 길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지만, 나는 멈춰있고, 웃음도 멈춰있고 즐거움도 멈춰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 당첨금인 5000원으로 다시 로또 5장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기회삼아 다시 며칠간 일말의 기대를 품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몇백 아니 몇억이 될 수 있는 종이야. 그렇게 잠깐 들뜨는 마음으로 며칠을 살고, 일상 속 어딘가에서 튀어나오는 희망들이 반복되며 평생을 살아낼 수 있겠지. 어쩌면 5000원에 당첨된 로또에 한 장에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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