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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Oct 03. 2023

그를 다시 만나게 돼버린 내가 느끼는 건 무력감이었다.

재회




그와 이별 후 난 후련했다. 4개월 밖에 안 사귀었는데 왜 이렇게 헤어지기 어려웠을까. 관계에서 빠져나온 뒤 해방감을 느낀 나와 달리 그는 구멍이 뻥 뚫린 듯 보였다. 번호를 차단했음에도 유심까지 바꿔가며 매일 같이 오는 연락이, 밤늦게 우리 집 앞에서 안절부절못한 채 날 기다리던 표정이, 그 손에 쥐어진 편지가 부담스러웠고 불편했다.


본래 마음에 두지 않은 타인의 관심이라도 기꺼이 여기던 나였지만, 그만은 예외였다. 그가 날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내 기준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과거를, 결점을 지닌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객관적으로 다 나처럼 생각하겠지.



마지막 순간, 이별통보를 부정하던 그는 결국 체념했는지 묻지도 않은 얘길 했다.


"xx, 사실 그거 어느 정도 진짜였어."


벙찌지 않을 수 없었다. 3개월간 그리도 알고 싶던 진실을, 절대 아니라며 눈물로써 부정하던 그의 입술이 스스로 증빙했으니. 남우주연상급 연기에 박수라도 쳐야 하는 걸까. 행여 언젠가 그가 그리워진다 해도 난 이 사실을 기둥 삼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다시는 내 인생에 들어오지 말아 줘.





인간의 뇌는 12개월이 지나면 대부분의 사실을 잊는다고 한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9개월 동안 차차 내가 겪은 일들을 잊어갔다. 400km 남짓 떨어진 본가로 내려왔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연애를 하면서 그와의 기억을 지워갔다. 급류 하는 물살 같던 감정은 하류에 이른 듯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연락이 왔다. 처음엔 재회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장문이었다. 차단 메시지함을 열어야만 볼 수 있는. '너만큼 사랑한 여자는 없었어.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전화 한 번만 하면 안 될까.'


다음엔 원망이었다. '삶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어.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야.' 후엔 점차 짧아져 '잘 지내니' 한 마디의 안부 카톡이 되었고, 마지막엔 익숙한 11글자가 찍혀있는 부재중 통화 1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걸 읽는 내 표정엔 변화가 생겨갔다.  


어쩌면 그가 나의 기억을 지워가는 동안,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다시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문장들에서 점차 그의 마음을 읽고 동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생에서 안되면 다음 생에서라도 네 옆자리에 있고 싶어.'


거의 유일하게 답장을 한 문자였다. 내세를 믿진 않지만, 이번 생에서는 안될 이유들 다음 생에는 없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정말 평행 세계가 있다면... 나 역시 그를 사랑하긴 했나 보다.


하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곁엔 남자친구가 있었고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다음 생이니까 그 정도는 되겠지. 멀리서 그의 삶을 응원하겠다며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2달 뒤, 나는 이별했다. 책임은 전남자친구에게 있었 나는 통보했다. 이성에 따라서 만난 사람과 이성에 따 결이었다. 일주일분의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고 동안 다락방에서 숨어 지냈다. 문득 그가 보고 싶었다. 나만을 바라봐주는 사람, 누가 뭐래도 나를 쫓았던 사람. 이제껏 나는 사회의 기준과 기대에 부응하려 했다. 그러나 머리를 따른다 해도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면, 마음 가는 대로 순간을 살고 싶었다.



만약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된다면 해주고픈 말이 있었다. 가을밤, 우리 집 앞에서 내게 편지를 건네던 떨리는 손과 안절부절못하던 표정에 전하고 싶었다. '더 이상 네 탓하지 마. 이제 괜찮아.' 그리고 나는 9개월 만에 그를 서울역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연락을 한건 나였다. 400km를 달려온 것 역시 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소회는 반가움이었다. 근황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순간 현실감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마주 앉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도 그렇다고 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 밑바닥까지 끌어안으려 했던 사람과 말끔한 모습을 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한 기분은.


그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놀랍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고 얼핏 생각했었다. 그를 보고 싶었던 건 맞지만, 아무것도 정하고 올라오지 않았기에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여자친구 얘길 하는 그가 좀 다르게 보였다. 300일 동안 그의 문장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에게 다가서고 있었지만, 마주 앉은 사이로 400km라는 거리와 공백의 시간이 느껴졌다. 우리의 관계가 모두 과거라고 말해주는 듯.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낯설었다. 이별 후 한 번도 기다린 적 없었던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가. 그리고 다음  아침, 액정에 대했던 이름이 다. 갑자기 아진 표정을 한 나를 친구들은 배웅해 줬고 그와 남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2주간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각자 생각을 정리해 보고 다시 만나기로 결정한다면 2주 뒤에 보게 될 것이고 그게 아니면 다시는 못 보겠지라며 둘 다 말끝을 흐렸다. 서울에서의 만남이 있고 며칠 뒤, 그는 얼른 현재 연인을 정리하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내게 시간이 더 필요하냐고 묻기도 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는 말을 남겼지만, 내 마음 역시 그를 향해 있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매일 1cm씩 그에게로 고 있었으니까. 일상을 주고받고, 매일 밤 통화를 하고, 연인처럼 행동했다. 여자친구에 관해서는 웬만하면 묻지 않았으나,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그 사이 우리는 한번 더 만났고, 그는 더운 날씨에 식당을 찾아 걷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나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났다. 보름을 채 기 전, 우리가 다시 사귄다면 나를 많이 사랑해 줄 거냐 물었고 그는 그러겠노라 답했다. 우리는 다시 연인이 되었다.





8월 15일. 광복절. D-DAY가 되었다. 나는 공휴일 단축근무를 끝내고 3시 출발 서울행 KTX를 탈 예정이었다. 그를 볼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다만, 요 며칠 타이밍이 맞지 않아 제대로 연락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렇지만 뭐 곧 볼 거니까.


근무로 바쁜 오전,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6시 도착인 기차를 10시로 미루면 안 되느냐고. PT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늘 아니면 받기가 어려울 거 같다고. 갑작스러운 얘기에 당황스럽고 짜증이 났다. 일을 마치면 서울로 바로 가겠다고 분주히 캐리어를 챙겨 기분 좋게 나서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PT가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그러는데.


기분 나쁜 티를 내니 그가 점점 횡설수설하더니 답장이 늦어졌다. 그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2시에 근무를 마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역으로 항하면서 몇 번을 걸어도 통화연결음만 이어질 뿐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우선 집으로 향했다. 그래, 10시라고 했잖아. 기다려보자.



약속을 해놓고 잠수를 탈 만큼 그는 예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명 좀 해달라는 메시지에도 묵묵부답이었고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 몇 시간째 이어졌다. 나는 진정하기 어려웠고, 처방받아 놓고 거의 입에 댄 적 없는 정신과약 한 봉지와 타이레놀 2알을 먹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무슨 일이 있는 걸 거야.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파괴적인 상상을 하기 싫었다. 다행히 약 기운에 취해 30분간 잠이 들었다.



3시 42분, 잠에서 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한통 와있었다.



"미안해, XX 나중에 연락할게."


덜컹. 마음이 내려앉았다. 바로 번호를 눌렀지만, 이번엔 신호음조차 가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그에게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내가 아닌 여자친구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헤어진 뒤 차츰 그의 마음을 믿게 되었었다. 그에게 동화되었고, 그를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게 됐다. 결국 다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관계를 말린대도 내 선택에 확신이 있다고, 내가 행복한 길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는데. 너한테만 그러는 게 아닐 거라는 친구들의 장난 섞인 농담에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믿었다. 아주 조금씩 쌓아왔던 믿음이 한순간에 배신감으로 바뀌자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문자라도 볼까 싶어 미친 사람처럼 자판을 눌렀다. '전화받아. 받아서 얘기해.' '나한테 이러는 거 후회할 거야.' '내가 오빠 직장에 다 알릴 거야.' ' 오빠 여자친구가 나랑 있었던 일을 알아도 계속 그렇게 착하게 대해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오빠 나한테 그럴 사람 아니잖아.


우습게도 협박조의 내용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여자친구와 나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는 말. 너는 나한테 잘못한 적이 있지만 지금 여자친구는 자기한테 그런  없이 잘해준다는 말. 여자친구랑 있어서 길게 못 받는다는 말. 그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찌르고 저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뜨렸다.



"정리하더라도 얼굴 보고 정리해. 지금 당장 대구로 와." 내가 말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

"대전으로 와 그럼."

"나중에 보자."

"나중이 어딨어? 이제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밤에 전화할게"

"뭐? 아니 나는 무조건 얼굴 볼 거야. 내가 서울로 갈 거니까 만나. 정리해도 얼굴 보고 정리해."


 

펑펑 울면서 운전했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표가 없어 입석을 탔고,  가면서도 울었다. 만나기로 한 날, 나를 차단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간 그의 행동은 나를 잃기로 결정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더 좋게 풀어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밑바닥을 알면서도 다시 사랑하기로 했는데 그는 이전에 받은 상처가 무서워서 1달 사귄 여자 친구에게 도망치려 했다. 사랑을 속삭이고 연인이 되기로 하고선 나를 배신했다. 나는 왜 그런 사람의 얼굴을 보겠다고 서울로 가고 있을까. 객실 사이 공간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잘 지내던 내 삶을 뒤흔든 건 그였다. 평화로운 삶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건 내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그였다. 울분에 찬 협박이 먹힌 건지 자신의 안위가 걱정된 건지 전화말미에 그는 녀를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늦은 저녁 서울역 밖 잔디옆 모퉁이에 앉아 울면서, 여자친구를 정리하느라 30분을 늦는다는 그를 기다리는 내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왜 여기 을까. 사랑? 복수심? 그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그를 다시 만나도 되는 걸까?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나는 9개월 전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었고, 어렵사리 관계에서 빠져나왔다.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제야 기억났다. 그를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곱씹어보면 그와의 인연을 몇 번이고 정리하려 했다. 2번째 만남 이후 거절하는 문장을 보내고 차단했는데 그에게 온 전화는 거절하지 못했고, 받아들이기 힘든 과거를 알고 난 다음 날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지만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무시하진 못했다. 지긋지긋한 인연, 악연일까. 에게 마음을 줘버려 놓고도 꽉 맞물린 조개처럼 빗장을 닫아버린 내가, 자유의지가 거세된 인간처럼 느껴진다. 이도저도 못하는 무력감. 그게 그를 다시 만나게 돼버린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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