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3. 초보의사일지
오늘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처음 보는 모르는 영화를 봤는데, 마동석이 나오는 영화였다. 엄청 무서운 분위기에 사람들이 밤이 되면 괴물처럼 변하는데 그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벌레였다. 벌레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고, 주인공은 지하 공연장 같은 곳에 있다가 주위 사람들이 감염되면서 벌레가 옮기는 걸 피해서 도망간다. 밖에 나갔을 때 몇몇 사람들이 멈춰있고 (빛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다가가지만, 주인공은 밤이 되기 전에 또 도망을 가는 게 내용이었다.
그런 꿈을 꾸고 뒤숭숭한 기분으로 나와서 진료를 시작했다. 한 할머니가 있는데, 기록을 보니 같이 일하는 형이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서 약을 중단했고, 90대이고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보호자에게 약을 중단했으니 조금 뒤에 보건소에 와서 혈압 한 번 더 재보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보호자가 왔는데, 미리 혈압을 재고 들어오는 시스템인데 혈압을 재고 오지 않아서 "혈압 먼저 재고 들어오세요" 했더니, "왜 우리가 재요?" 라고 했다. 말투부터 나 여기 오기 정말 싫었는데 너네가 부탁해서 왔다는 표현이라 기분이 확 나빠졌다. "혈압 tv 옆에 기계 있으니까 혈압 재고 오세요"라는 말에 90대한테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말하길래, 이 섬에 있는 90대 노인들도 다 재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자마자 기분 나쁜 것을 나한테 푸는 환자들 / 보호자들이 있다. 그 사람들한테는 의사가 화내도 되는 존재로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나도 그냥 "의사"가 아니라 한 인간인데, 왜 짜증을 낼까. 집에서 5분 걸어와서 진료받는 자신이 더 귀찮을지 집에서 6시간도 더 걸려서 이 섬에 오는 내가 더 귀찮을지 생각해줄 필요까진 없지만, 내가 불친절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시비만 안걸면 좋겠다.
1년 동안 의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되게 서비스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경우에 웃으면서 감사한다고만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치유되는지 느꼈다. 이걸 느낀 뒤로는 음식점에 가거나, 서비스직을 만날 일이 있으면 꼭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감사하다고 하는 환자들에게는 약을 더 신경써서 처방하고 향후 관리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을 스스로 느껴서 더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