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무 Oct 20. 2023

먹이는 일에 관하여

  내 몸에 남아있는 습관이나 생활 방식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이 미쳐있는 건 먹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엄마만의 조리법, 집안 특유의 간, 우리 집에만 있는 특별한 메뉴 같은 것들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흐르고 아무리 바깥 음식을 먹어도 쉽게 잊히거나 바뀌지 않는다. 머리가 아닌 혀와 마음으로 기억하기 때문일까. 타고나길 손맛이 좋게 타고나는 사람이 있는데, 나의 엄마가 그렇다. 똑같은 재료와 레시피로 만들어도 엄마가 만든 음식은 더 감칠맛이 있고 간이 딱 맞다. 나야 엄마가 해준 맛에 길들여져 그렇다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맛있다고 하니 완전히 주관적인 건 아닐 것이다.      

 

  엄마는 대부분의 음식을 집에서 뚝딱 만들어냈다. 미꾸라지를 푹 고아 체에 걸러 말갛게 경상도식 추어탕을 끓이거나 돼지고기 등심을 두드리고 반죽을 입히고 튀겨 돈가스를 만들었다. 일을 시작하면 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그녀는 돈가스 소스도 직접 만들었다. 밀가루를 버터에 볶는 루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소스는 어떤 돈가스 집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다. 더 많은 돈가스를 경험한 지금도 엄마의 소스는 가장 특별하고 맛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도넛, 미트볼, 탕수육, 피자빵 같은 맛있는 수제 간식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와 동생들이 맛있게 먹는 동안 엄마는 또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면 그 배경은 항상 부엌이었다. 쭉 그렇게 살아와서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친구들 집에 몇 번 놀러 가면서 모든 엄마가 집에 있는 것은 아니며 집에 있는 엄마라고 다 그렇게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도 몰랐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던 그 시간들에 대해서. 그 시간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그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았는지.       

 


  자취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음식을 직접 해 먹는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배달시킨 횟수를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전적으로 엄마의 영향이다. 나는 세 명의 자식 중에서 엄마의 손을 가장 닮은 자식이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일까, 아니면 모계로만 이어지는 특별한 손맛의 유전이 있는 걸까. 혼자 살게 되면서 밥을 먹는 행위는 그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힘들고 지쳐서 다 놓고 눕고 싶을 때, 자기혐오와 우울에 빠질 때, 사는 게 다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더더욱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다 귀찮으니 손가락만 좀 움직여 배달을 시키거나 대충 컵라면에 물만 부으려 하다가도 비척거리며 일어나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었다. 배추를 썰어 넣은 맑고 심심한 된장국이나 매콤하게 조린 무 조림을 먹으면 상처받은 마음에게도 밥을 먹이는 것 같았다. 재료를 사고 다듬고 보관하는 번거로움을 견디고, 여러 조미료를 가미해서 끓이거나 볶거나 굽는 귀찮음을 이겨내면 마음의 건강도 지켜낼 수 있었다. 그건 좋아하는 라면이나 치킨으로는 대체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프거나 바빠서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먹이려 했다. 입맛이 없거나 먹기 싫어도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구수한 숭늉을 끓이거나 말간 된장국에 흰 밥을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 나가기 바빴던 고등학생 시절엔 먹기 편한 주먹밥이나 김밥 같은 것을 매일 재료를 달리해서 만들어줬다. 엄마가 머리를 말려주는 동안 램 수면 상태로 주먹밥을 오물거리곤 했다. 밥보다는 잠을 선택하고 싶을 때 엄마의 그런 마음이 귀찮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왜 그렇게 엄마가 나를 먹이려 했는지를. 왜 엄마의 인사는 늘 '밥은 먹었니?'로 시작하는지를. 정성스레 차린 따뜻한 밥상이 지치고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힘을 주는지를. 음식을 먹는다는 건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먹는 거였다. 그래서 엄마의 밥을 먹으면 아픈 몸도 마음도 금방 낫는 거였다. 크게 아프지 않으며 살아온 것도 다 엄마 덕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함께 살 때도 종종 요리를 했지만, 그건 특별하게 하는 취미 같은 일이었다. 혼자 살면서 하는 요리는 멋진 취미보다는 살림의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매일 밥을 차리는 엄마를 더 생각하게 됐다. 오늘의 저렴한 재료를 사기 위해 매일같이 장을 보고, 그걸 사다가 다듬고 손질해서 모양과 맛이 있는 반찬을 만들어내기까지 지난하고도 외로웠을 엄마의 시간들을. 혼자서는 대충 먹지만, 가족들을 위해서는 몇 첩이고 반찬을 만들어 거하게 차려내는 엄마의 마음을. 그 마음을 모조리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야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것이다.





나를 먹이고 살리는 엄마의 밥상


이전 01화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타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