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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고로케 밥을 아시나요?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할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영상매체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니 잡지나 책, 라디오가 엄마의 요리 선생이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은 대로 만들어본 요리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엄마만의 레시피로 자리 잡았는데 그게 ‘고로케 밥’이다. 보통의 고로케(크로켓)는 감자를 주재료로 해서 튀기는 것이지만, 고로케 밥은 말 그대로 밥을 튀긴다. 밥에 양파, 당근, 고기, 피망, 감자, 버섯 등을 아주 잘게 다져서 볶아 넣은 후 약간 길쭉한 타원형으로 뭉쳐서 밀가루를 살짝 묻히고 달걀 물을 입힌 뒤 빵가루에 굴려 튀긴다. 글로 쓰니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우선 모든 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일이다. 거의 쌀 크기와 비슷하게 다져야 하므로 칼을 엄청 쓴다. 밥은 멥쌀과 찹쌀을 섞어 짓는데 질면 흐물거리면서 식감이 좋지 않고, 되면 흩어져서 뭉치기 힘들기 때문에 적당한 농도를 잘 맞춰야 한다. 모든 재료를 섞은 밥을 손으로 쥐어 모양을 만드는 것도 한참 걸리고, 일일이 반죽을 입혀 튀기는 건 중노동에 가깝다. 


  엄마는 우리가 소풍을 갈 때면 김밥 대신 고로케 밥을 싸줬다. 수많은 김밥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도시락 메뉴였다. 맛을 본 친구들은 본인의 김밥을 제쳐두고 내 옆으로 왔고, 담임선생님마저 어떻게 만드는 건지 엄마에게 직접 물어볼 정도였다. 특별한 도시락으로 의기양양해진 철부지는 그렇게 정성과 땀이 들어간 음식인 줄 모르고 친구들과 나눠먹게, 선생님 가져다 드리게 더 많이 싸달라고 조르곤 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해서 존재감 없는 내가 유일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던 순간이 그때였고, 그건 오로지 엄마의 고로케 밥 덕분이었다.       

  최근에 엄마와 함께 고로케 밥을 만들며 어린 시절의 소풍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음료를 하나씩 사두고 다음날이 기대돼 일찍 잠들지도 못했던 날. 엄마는 저녁 늦게까지 재료를 준비해 두고서 새벽에 일어나 그 많은 고로케 밥을 만들어냈다. 엄마의 고로케 밥이 있어야만 소풍은 완성됐다. 엄마와 내가 역할을 분담해서 만들었는데도 완성하기까지 한참 걸렸다. 엄마는 내가 도와서 그나마 빨리 끝난 거라고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왜 도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를 위해 만드는 건데 너무 당연하게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인가, 자식이란 건 원래 그렇게 무심하고 이기적인가. 여전히 지금도 ‘소풍’하면 알록달록한 색의 김밥보다는 노릇한 갈색으로 잘 튀겨진 고로케 밥이 떠오른다. 아마 내가 더 나이를 먹어도 이러한 연상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힘든 과정을 거치며 고로케 밥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 맛이 자주 생각나서 먹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럼 엄마는 군말 없이 재료를 잔뜩 사 와서 백 개는 족히 넘는 수의 고로케 밥을 넉넉히 튀겨낸다. 갓 튀겨진 뜨거운 고로케 밥을 케첩에 찍어 먹으며 생각한다. 자식은 아무래도 나이와 상관없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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