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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엄마의 트라우마를 알았다

  트라우마는 ‘상처’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경험이나 사건으로 인한 큰 상처를 뜻한다. 대체로 무난하고 잔잔한 유년시절을 보내서인지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길만한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 자세히 헤집어 보자면 왕따도 당해보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보고, 자전거에서 날아가거나 하는 일들도 있었으나 그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지대한 트라우마를 남기지는 않았다. 어떤 것에 고개를 내저을만한 트라우마가 없이 자랐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나의 친가는 경상남도에, 외가는 경상북도에 있다. 본가가 있는 경기도에서 경상도 까지는 못해도 차로 4시간은 걸린다. 근데 그건 평상시에 차가 안 막힐 때 얘기고, 명절에는 절대 그 시간으로는 갈 수 없다. 차가 막힐 걸 대비해서 새벽 일찍 출발하거나 밤늦게 출발해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항상 차가 많다. 기상 상황이 안 좋거나 사고라도 나면 길에 멈춰서는 일도 허다하다. 한 번은 설날에 폭우가 쏟아지던 적이 있었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차가 멈춰 섰다. 참다못한 사람들이 차를 고속도로에 세워두고 걸어 나와서 휴게소를 다녀가곤 했다. 그때 이동시간만 15시간이 걸렸다. 그런 이유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길이 매우 신나지는 않았다. 답답한 차 안에 몇 시간이고 갇혀 있어야 하는데 차멀미도 심하게 했다. 나이를 먹어도 멀미는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고, 잠을 자거나 물이나 커피 같은 음료를 꾸준히 마셔주면 좀 나았다. 그럴 경우 문제는 화장실이 자주 마려워진다는 것인데 차가 막히거나 휴게소가 보이지 않아 참고 참다 보면 척추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쫙 돋고는 했다. 요즘은 곳곳에 졸음쉼터가 있어 다행인데, 엄마는 졸음쉼터의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다. 졸음쉼터의 화장실은 간이로 만든 것이긴 해도 번듯한 게 있는가 하면, 멀리서 보기만 해도 냄새가 풍겨올 것 같은 것도 있다. 아주 최근에는 대부분의 화장실들이 깨끗하고 나름 번듯한데, 졸음쉼터 화장실이 처음 생길 때만 해도 그건 그냥 정말 급한 사람들을 위한 가림막 정도의 느낌이었다. 나는 엄마가 더러워서 피하는 줄 알았다. 그 이유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엄마가 간이 화장실이나 번듯하지 않은, 작고 어두운 화장실을 피하는 이유를 아주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엄마인 내 외할머니는 집을 자주 비웠다. 대부분 아파서 수술하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입원하지 않은 날들은 밭에 나가서 일을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엄마와 큰삼촌은 친척집에 맡겨진 기간이 있었다. 큰집에 맡겨진 엄마와 큰삼촌은 뼈가 다 자라지도 않은 시절부터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던 것 같다. 부유하고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늘어난 입들이 달갑지는 않았겠으나 밥 먹는 걸로도 눈치를 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쓰리고 화가 났다. 하루는 어린 나의 엄마가 제 엄마를 보고 싶어 하며 투정을 부리고 울었다. 고작 해봐야 다섯 살 혹은 일곱 살 정도였다고 했다. 큰 집에는 사촌들이 많았는데 가장 큰 사촌언니의 나이가 스무 살 정도였다. 그는 우는 엄마를 허리춤에 가로로 둘러메고 화장실에 데려가 겁을 줬다. 당시 큰 집의 화장실은 푸세식으로 바닥이 컴컴하게 보이지 않는 공간 양 옆으로 나무판자를 댄 모양이었다. 사촌언니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어린아이를 들어 안아 던지듯 양 옆으로 흔들면서 계속 울면 저 밑으로 던져버린다고 했단다. 나는 사진으로만 봤던 푸세식 화장실을 그려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밑바닥, 대변과 소변이 섞인 냄새, 어둡고 꿉꿉한 화장실의 습기까지. 겪어보지 않아서 정밀하게 상상할 수 없어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어린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덩치 큰 사람에게 붙잡혀 어두운 화장실 밑바닥에 던져진다는 협박을 받는 어린아이의 마음은. 울면 던져진다니 울음은 그쳐야겠는데, 무서워서 더 큰 울음이 날 것 같은 마음은. 아픈 엄마를 둔 설움과 가족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화장실에 대한 직관적인 공포가 뒤섞여 엄마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었다. 엄마는 그때부터 어둡고 좁은 화장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옛날 화장실, 더럽고 허술하게 만든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나이가 0에 가깝던 시절에 겪은 일이 100에 가까운 지금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살아오면서 조금은 흐려지고 깎였겠지만 어떤 화장실을 보면 그 기억은 갑자기 선명해지고 날카로워지는 듯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엄마는 그 사촌언니를 마주했다. 그리고 원망하듯 털어놨다고 했다. 언니가 그때 나한테 그렇게 해서 내가 아직도 화장실이 무섭다고. 그러나 언니는 내가 그랬냐며 기억하지 못했다. 역시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건 피해자의 몫인 듯했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뒤늦은 사과라도 한 마디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릴 때 장난으로 유난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때 그 사람을 알았더라면 실수인 척 국이나 반찬을 엎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는 못됐다.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그러지 못한 게 애석하다. 그런다고 엄마의 트라우마가 없어 지지야 않겠지만 뾰족한 한 귀퉁이를 깎아낼 수는 있지 않을까.      

 

  엄마와 어딘가를 가면 나는 제일 먼저 화장실을 살핀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엄마는 내게 묻는다. “화장실 깨끗해?” 이제 나는 그 말이 청결하냐는 뜻만이 아님을 안다. 기준을 조금이라도 충족하지 않는 화장실이라면 엄마를 따라가거나 혹은 같이 들어가기도 한다. 어릴 때 엄마가 내게 그러했듯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엄마와 함께 화장실에 간다. 엄마가 볼 일을 보는 동안 무사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내 일이며 그럴 때 나는 잠시 그의 보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고 화장실만은 같이 가줄 수 있는 보호자가 되자고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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