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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여전히 모르지만

  엄마의 첫 해외 여행지는 베트남 냐짱이었다. 나와 사촌동생은 베트남을 몇 번 가봐서 베트남이 익숙하기도 했고, 그중에서도 냐짱은 깨끗하고 치안이 좋다고 해서 어른과 함께 여행하기 편한 여행지인 것 같았다. 나는 비행기를 꽤 많이 타도 탈 때마다 늘 긴장한다. 이륙 준비를 마치고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 의자 손잡이를 잡고 눈을 감는다. 속으로 계속해서 누구에게라도 기도한다. 제발 빨리 이륙하고 무사히 비행해서 착륙하게 해 주세요. 컨디션에 따라서는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리거나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나는 이걸 '비행기 멀미'라고 칭하는데 공포증의 증상인지도 모르겠다. 새벽 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니 피곤함과 긴장감이 뒤섞여 나쁜 컨디션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나는 경험자로서 엄마를 우선 살폈다. 제주도 가는 1시간짜리 비행만 해 본 엄마라 5시간의 비교적 장시간 비행이 괜찮을지 걱정됐다. 걱정이 무색하게 엄마는 너무나 괜찮았고, 외려 창백하게 질린 나를 토닥이고 계속 신경 썼다. 내 증상은 이륙 후 난기류만 없다면 대체로 괜찮아지는데 그날은 유독 비행 내내 좋지 않았다. 예민해진 나를 케어한 건 승무원이 아닌 엄마였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해야 편해지는지, 괜찮아지는지를 알았다. 엄마의 케어로 컨디션은 좋아졌지만 밤을 거의 새운 수준이라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 입국심사는 역대급으로 느렸다. 공항에 도착해서 벗어나기까지 거의 3시간이 걸렸고,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쳤다. 경험자고 뭐고 엄마를 챙길 여력이 없었는데 의외로 엄마는 매우 괜찮아 보였다. 괜찮냐고 물으면 곧바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여행 내내 그랬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역시 음식이었다. 내게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여행은 해당 장소의 문화를 몸소 느껴보려 가는 것이고, 그 문화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고 그게 설사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해도 기꺼이 웃어넘길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이건 친구들과 여행할 때 이야기고, 나의 엄마는 까다롭다. 특히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더 까다롭게 대한다. 엄마는 호불호가 확실하고 냄새와 위생에 민감하다.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이 엄마에게도 호감이길 바랐다. 여행 내내 현지 음식은 입에도 못 대고 한식당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러니 베트남 현지 음식을 하되 청결하며 또 너무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는 곳을 찾아야 했다. 블로그의 모든 후기와 구글맵의 모든 후기를 읽으며 고르고 고른 식당들이지만 입맛은 역시 개개의 것이라 식당에 방문할 때마다 긴장했다. 엄마가 베트남 쌀국수의 첫 입을 뜨는 순간, 나는 고대하던 선물을 내민 사람처럼 엄마의 표정만을 살폈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엄마는 쌀국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오히려 한국의 베트남식당에서 먹던 것보다 입맛에 맞는다며 국물까지 들고 마셨다. 분짜나 반미, 반쎄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청결도가 떨어지는 식당에 가면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움츠렸는데 그는 별달리 반응하지 않고, 휴지를 몇 장 뽑아 슥슥 자리를 닦고 앉았다. 엄마의 반응이 너무 쿨해서 내심 놀랐다. 그녀는 어디를 가도 청소할 곳을 찾는 사람이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내 자취방에 와서도, 한국의 어떤 식당에 가서도 지저분한 부분이 보이면 짚어내어 청소해야겠다 혹은 청소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여행지에서도 그럴 거라 생각한 건 내 오해였다. 엄마는 까다로운 기준을 고수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응하는 사람이었다. 뜨겁고 습한 날씨, 시끄럽고 복잡한 도로, 더럽거나 좁은 길가, 낯선 언어와 사람들에 금방 적응했다. 마치 휴지에 물이 스미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술을 즐기지 않지만 우리를 따라 클럽 바에도 가고, 바닷가 아무 데나 앉아 맥주를 들이켜기도 했다. 매일 밤 침대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 엄마는 ‘기분이 좋아 그런지 취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엄마를 틀에 가두고 있는 건 나인지도 몰랐다.     

 


  효도여행을 콘셉트로 잡긴 했지만 언제까지나 잔잔할 수는 없어 사촌동생과 나의 욕심으로 호핑 투어를 일정에 넣었다. 바다와 섬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투어 즉, 계속 바다에 있는 날이었다. 중국인들 사이에 끼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스피드 보트를 타고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갔다. 그동안 내가 즐겼던 스노클링은 얕은 바닷가 혹은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 하는 것이었는데, 도착한 장소는 망망대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 깊숙이 들어가는 스쿠버다이빙도 함께 체험해야 해서 그런 듯했는데, 물을 좋아하는 나도 처음엔 겁이 날 정도였다. 엄마는 물에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심해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무서우면 배에만 있어도 된다고 일렀다. 호기롭게 첫 타자로 나선 이모가 물에 들어가자마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게 무섭다며 후다닥 올라와 포기 선언을 했다. 나는 재차 엄마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다. 포기하고 이모와 함께 배에 있을 줄 알았으나 엄마는 당차게 대답했다.     


  “한 번 가볼게! 들어가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나올게.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는 가봐야지. 대신 내 손 꼭 잡아줘.”     

 

  나는 먼저 물에 들어가 엄마가 들어오자마자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이 마치 어린 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엄마가 손을 잡던 것과 비슷했다고 하면 우스운 비유일까. 엄마는 내게 거의 팔짱을 끼듯 꼭 붙어서 조심히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든 OK사인으로 계속해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 들어 이상했다. 엄마는 내게 의지하며 조금씩 헤엄쳤고, 앞으로 나아갔고, 곧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바닷속은 맑고 깨끗했지만 깊이만큼이나 어두웠다. 너무 깊어서 물고기는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나에게 꼭 붙었던 엄마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손의 힘을 풀었다. 나는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깊고 넓은 바다에 오롯이 혼자 떠 있는 해방감, 무서우면서도 자유로운 희귀한 기분. 내가 옆에 있을 거고 구명조끼를 입었기 때문에 절대 빠지지 않으며 무서우면 바로 손을 잡아주겠다고 말하고 엄마의 손을 살짝 놓았다. 엄마는 그렇게 깊은 바다 한가운데 혼자서 스노클링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처럼 신나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여전히 엄마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그것만으로 그녀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도 내가 모르는 시절과 감정과 꿈과 비밀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그녀는 내 모든 생을 지켜봤지만 나는 그녀의 모든 생을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남아있는 생 동안 내가 모르는 그녀의 새로운 모습들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것이다. 낯선 음식에 도전하거나 두려워도 일단 해보거나 영어로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보거나 하는 일들 사이에 피어나는 아이처럼 천진한 모습, 두렵거나 호기심 가득한 모습, 엄청난 행복으로 활짝 웃는 모습, 당황하고 짜증 내는 모습 같은 것들. 나는 여전히 그녀를 모르겠지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 소중히 간직해 둘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는 그녀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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