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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

  우리 집에서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은 엄마다. 다섯 명의 식구가 모두 있을 때 잠드는 순서는 아빠, 둘째, 막내, 나, 엄마 이렇게 된다. 가장 일찍 일어나는 사람도 엄마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 중 하루를 가장 길게 사는 사람이 된다. 

 

  대학생이던 때 엄마가 가장 늦게 잠든다는 건 내게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야만 엄마는 잘 수 있었다. 나는 이십 대 후반까지도 통금시간이 있었다. 10대 시절부터 유지되던 것이었는데, 본래 하라는 대로 하는 순응형 인간이었던 나는 통금시간을 지키는 게 힘들었다. 대학교가 있는 인천에서 경기도의 집까지 오려면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교통 상황이 안 좋았기 때문인데, 지하철로는 너무 먼 여정이라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거나 학교의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집과 가까운 역으로 가는 셔틀버스의 막차시간은 밤 9시 20분이었다.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냐면, 개강이나 종강 총회처럼 단체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할 때 1차에서 고기를 구우며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2차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다. 셔틀버스 막차를 놓치면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가 몇 대 없었고 시외버스의 배차간격도 길어 통금을 훨씬 넘기게 되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깟 통금 따위 몇 번 보란 듯이 어겨서 자유를 얻어냈어야 하는 건데, 그랬으면 내 동생들도 좀 더 좋았을 건데 싶지만 그때는 부모의 울타리와 그늘 안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그런 고로 나는 무조건 9시 20분 셔틀버스 막차를 타야만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억울한 지점이 있었다. 회비는 동일하게 내는데 2차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1차에서 많이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2차에서 먹을 양까지 1차에서 마셔버리자는 생각으로 마시니 또 그게 잘 들어가서 스피드 음주가 되었고, 잘 취하지도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되건만 내 주변에 앉은 이들은 내 속도에 맞춘다고 따라 마시다 2차 가기 전에 인사불성이 되기 일쑤였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시간이 되면 빛의 속도로 사라지니 ‘밑 빠진 독’과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술이 약한 이들에게는 내 옆자리에 앉지 말라는 경고가 붙곤 했다. 술을 빨리 마시는 버릇은 그때 들어서 여전히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런 나도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 정도 거나하게 취해 통금시간을 훌쩍 넘기고 집에 들어갈 때가 있었다. 그날따라 기분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쁘면 평소와 같이 마셔도 훨씬 빨리 취했고, 그러다 보면 이성을 알코올에 내맡긴 채 통금이고 나발이고 엄마의 전화를 간간히 무시하며 잔뜩 취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있는 수단 없는 수단을 총 동원해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어두컴컴한 거실 소파에 우뚝 앉아 있었다. 알아서 들어갈 테니 먼저 자라고 해도 절대 그런 적이 없다. ‘사람이 집에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잠이 오니?’가 엄마의 지론이었다. 엄마가 먼저 잠이라도 들면, 밤 문화를 맘껏 즐기고 새벽에 몰래 살금살금 들어가거나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않으니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어두운 거실에서 혼자 앉아있을 엄마의 모습이 더 놀고 싶은 마음을 항상 이겼다.     

 

  내가 딸이어서 유난하게 통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내 남자 동생들도 똑같았다. 둘째는 나보다 온순한 성격이라 마찰을 일으키는 법이 없었으나 우리 집에서 돌연변이 역을 맡고 있는 막내는 통금 따위 개나 주라는 태도로 번번이 오늘을 넘기고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고 호통을 쳐도 씨알도 먹히지 않고, 외려 당당하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응수하는 싸가지 없지만 왠지 멋진 놈. 그가 한 번은 술에 잔뜩 취해 지하철에서 자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급하게 내리느라 그랬는지 휴대폰을 두고 내려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나와 엄마는 평화롭게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가 연락이 두절된 순간부터 평화는 깨졌다. 그전에 이미 빨리 오라고 소리를 쳐둔 상태였는데 이제 전화도 받지 않으니 엄마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엄마 전화를 부러 받지 않는가 싶어 나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무응답이었다. 그러다 다시 전화를 받아 이러저러했다는 설명을 들은 엄마는 들어오기만 해 보라며 엄포를 놨지만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했다. 시간은 새벽 2시를 향해 가는데 버스에서 내렸다고 연락한 녀석은 30분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20분 내외인데,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내가 친구들과 열심히 알코올 농도를 높이며 엄마의 연락을 미뤄두는 동안, 엄마는 1분 1초를 내내 마음 졸이며 걱정하고 있었구나. 혹여 술에 취해 다치지는 않을지, 밤길에 나쁜 일을 당하는 건 아닐지 끝도 없는 걱정으로 몰려오는 잠을 밀어내며 끝끝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내 공간을 가지게 되면서 그간의 한풀이를 하듯 통금을 여러 번 어겼다. 엄마에게는 지금 집에 들어왔다고 말하고 다음 장소로 옮겨간 적도 있었다. 거짓말은 나쁘지만 필요한 순간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한참 넘긴 내일에 귀가해도 작은 불을 켜두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었다. 텅 비어있는 깜깜한 공간에 들어설 때 외로움이 끼쳐오기도 했다. 그럼 긴 한숨으로 외로움을 몰아낸 후 얼른 씻고 침대에 눕는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동그마니 앉아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 모든 식구가 들어오고 모두의 잠자리를 봐주고 나서야 불을 끄고 자러 들어가는 사람. 그 시간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떠올리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다급히 눈을 감고 잠에 들기 위해 애쓰지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엄마의 그런 완고함은 더 어린 날의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지만, 어쩌면 한 편으로 위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가면 누군가 불을 밝힌 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린다는 위안. 언제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있다는 위안.


 

  요즘 엄마 집에 가면 잘 준비를 마치고 방문을 열어두고서 침대에 누워 엄마를 기다린다. 그럼 엄마가 슬쩍 들어와 이불을 덮거나 커튼을 정리해 주고 삐딱하게 누운 내 자세를 바로 잡아준다. 엄마의 그런 손길이 좋아서 일부러 더 삐딱하게 누워있어도 본다. 그리고서 잘 자라며 손을 꼭 잡고 붕붕 흔든다. 우리만의 자기 전 루틴이다. 편하게 푹 자라면서 문을 닫고 나가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한껏 평화로워진다. 그런 밤엔 꿈조차 꾸지 않고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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