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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유머러스한 엄마를 가졌다는 건

  요즘 내가 엄마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웃기다’와 ‘귀엽다’ 두 개다. 주변에서 가장 웃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나의 엄마를 1순위에 올릴 것이다. 그녀는 정말 웃기다. 내 엄마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웃긴 행동도, 웃긴 말도 많이 한다. 최근에야 그가 웃긴 걸 실감하고 있지만 그녀의 가족들을 보면 타고난 유머감각이 있는 것 같다. 포인트는 본인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웃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툭 뱉었는데 주변은 웃겨 뒤집어지는 것, 그게 진정한 유머다. 엄마와 같이 있으면 하루 종일 웃게 된다. 어디 같이 나가도 계속 웃는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그 말이 또 너무 웃기고, 웃음이 겨우 진정되고 나서 다시 떠올리면 또 웃음이 난다. 아무래도 코미디를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일들로 웃기기 때문에 다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서로가 없을 때 엄마가 웃겼던 일들을 까먹지 않고 말해주기 위해 메모를 한다.      

 

  엄마의 유머 특징은 뜬금없고 갑작스럽다는 데 있고 대부분의 경우 귀여움을 동반한다. 뜬금없이 이상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단어를 창조하는 식이다. 보통 나이가 들면 혼잣말에 멜로디를 붙인다고 하는데, 엄마는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양말이~ 어디에~ 있을까나~’의 수준이 아니라 ‘양말~ 양말을 찾아도 없어~ 어디로 간 건지~ 도망을 간 건지~ 양말에도 발이 있나 봐~’이런 느낌이라고 하면 차이가 느껴질까. 단순히 혼잣말에 음을 붙이는 게 아니라 서사를 만들고 작곡을 해버린다. 그리고 포인트는 작곡의 순간이 뜬금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양말을 찾으면서 만드는 노래가 아니고,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널면서 저런 노래를 부른다. 가만히 있던 나는 뜬금없음에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웃기 시작하는데 너무 웃겨서 다시 불러달라고 하면 가사도 음도 이전과 다르다. 엄마의 즉흥곡은 딱 한 번만 들을 수 있으니 재빨리 녹음하거나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마냥 웃기만 하다가 그 순간을 놓치고 나중에야 아쉬워한다. 아까 그 멜로디 좀 좋았는데, 가사 진짜 웃겼는데, 하면서. 

  노래만큼이나 춤도 갑작스럽다. 설거지를 하다가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드는 건 예사고 가만히 TV를 보다가 일어서서 경보하듯 집을 한 바퀴 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운동이야~’라는 심플한 답이 돌아온다. 소파에 얌전히 누워 TV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운동을 하는 사고의 프로세스는 잘 모르겠지만 집안을 빙빙 도는 엄마를 보면서 또 웃는다.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헉헉 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고 귀여운지. 가끔 음악방송에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화면을 보면서 춤을 따라 추기도 한다. 따라 춘다고는 하지만 실은 멋대로 추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또 비슷해서 어이없다. 소질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린다. 소파에 양쪽으로 머리를 대고 엄마랑 누워있으면 갑자기 발바닥을 맞대자고 한다. 이유는 몰라도 하라는 대로 발바닥을 맞대면 ‘이제 자전거를 타보자~’하며 다리를 열심히 돌린다. 갑자기 왜 하는 거냐고 물으면 ‘그냥, 재밌잖아~’하면서 다리를 위로 쭉 뻗었다가 옆으로 벌렸다가 난리가 난다. 나는 또 하자면 하자는 대로 열심히 동조하는데 늘 엄마가 먼저 지쳐서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      

  

  어느 날은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면서 ‘찹쌀 강아지야~ 일어나야지~’라고 했다. 찹쌀 강아지는 어떤 강아지인가? 나를 간혹 ‘애기’, ‘강아지’라고 부를 때는 있었지만 찹쌀 강아지는 난생처음 듣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찹쌀 강아지가 뭐냐고 묻자 ‘몰라~ 내가 만들었어. 그냥 찹쌀 강아지야~ 너는 찹쌀 강아지야~’란다. 뜬금없고 당황스러운데 웃기고 귀엽다. 그 뒤로 엄마는 찹쌀 강아지를 줄여서 ‘찹강’이라고 부른다. ‘찹강아~ 이거 좀 시켜줘, 찹강이는 밥 먹었니?’ 이런 식이다. 누가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보면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도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걸 허락했다.

  하루는 같이 TV를 보는데, 화면 속 누군가가 ‘개 멋있다’라는 말을 했다. 엄마는 ‘개 멋있는 게 뭐야? 개처럼 멋있다는 거야?’라고 물었다. 개처럼 멋있는 건 또 어떻게 멋있는 건지. 정확한 유래는 몰랐지만 ‘개’라는 강조 의미의 접두어를 여기저기 붙여서 ‘매우’를 의미한다고 말해줬다. ‘개 맛있어, 개 쩔어, 개 좋아, 개 귀여워’ 같은 식으로 쓴다고. 엄마는 요즘 길에 지나다닐 때 학생들이 쓰는 걸 들었다며 궁금했다고 했다. 며칠 뒤에 허리가 안 좋아서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간 엄마가 카톡 하나를 보내왔다. ‘일찍 왔는데도 대기 30번이야. 사람들 개 많아.’ 그 뒤로도 말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여기저기에 ‘개’를 붙여서 그때마다 웃고 말았다. 엄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도 웃겼지만 그 말을 그렇게 많이 활용하려는 엄마가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나와 동생이 웃기다고 하면 엄마는 안 웃기다고, 세상 사람들 다 이렇다고 응수한다. 네 친구들 엄마도 다 그럴 거라고 친구한테 물어보래서 진짜로 물어본 적도 있다. 너네 엄마 웃겨? 질문부터 이상하고 웃기다. 이 질문에 웃기다고 답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건 대체 무슨 질문이야? 너네 엄마는 웃겨? 하고 되물으면 나는 확신에 차서 이렇게 대답한다. “응, 우리 엄마는 겁나 웃겨.” 엄마는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말라고 한다. 친구들한테 이런 거 얘기하지 말라고. 근데 나는 엄마가 웃긴 게 좋다. 그래서 엄마가 웃겼던 일을 친구들한테도 다 얘기한다. 우리 엄마가 이랬는데 진짜 웃기지?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다 웃었다고 다시 얘기해 주면 창피하다면서 또 창피함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광대뼈가 내려올 틈이 없다. 

  

  유머감각을 지닌 엄마를 둔 건 엄청난 행운이다. 함께 있으면 계속 웃게 되는 사람이 내 엄마라는 사실은 엄청난 자랑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꼭 유머가 필요하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유쾌한 한 마디에 씩 웃을 수 있다면 어쨌거나 살아나갈 수 있다. 순도 백 퍼센트로 웃기는 엄마의 무해한 유머는 그렇게 나를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바쁘고 지칠 때, 우울하거나 무료할 때 엄마의 웃기는 한 마디를 보며 잠깐 웃었던 순간들이 내 삶에는 많이 있었다. 그 잠깐의 순간들이 쌓이고 모여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고 엉뚱한 엄마의 유머가 윤활유가 되어 삐걱거리는 인생 모든 곳에 기름칠을 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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