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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엄마와 북촌 한옥마을에 가보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북촌에 가고 싶다고 언제 한 번 같이 가자고 했다. 엄마의 데이트 신청은 처음이었다. 그와 나는 친밀한 사이이고 어디든 같이 잘 다니는 편이지만 주로 제안하는 건 내 쪽이었다. “나 뭐 좀 살게 있는데 같이 나가자!”, “오늘은 나가서 점심 먹을까?”, “쇼핑하러 갈래?” 이건 주로 나의 대사였고, 엄마는 그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오는 역할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가 특정한 장소를 집어 먼저 가자고 말하는 게 처음이었기에 나는 놀라면서도 내심 기뻤다. 다른 사람을 우선하던 사람이 원하는 바를 말하는 순간은 언제나 감격스럽기 때문이다. 왜 하필 북촌인가 하니, 이모가 북촌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다고 자랑을 한 모양이었다. 이모네 가족들은 다 같이 어디든 잘 다니는데 그러고 나서 꼭 엄마에게 ‘여기가 정말 좋더라, 예쁘더라, 맛있더라.’라는 식의 자랑을 한다. 이모의 입장에선 그저 말하는 것이겠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랑으로 들릴 법도 했다. 엄마는 TV 보니까 외국인들도 많이 가던데 서울에 가까운 경기도에 살면서 북촌을 한 번도 안 가본 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뒤에 이어지는 말이 무엇일지 몰라도 서글픈 단어임에는 분명했기에 당장 날을 잡았다.      

 

   나도 집 밖을 야무지게 돌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서울 곳곳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 북촌은 조금 지루할 만큼 많이 가본 장소였다. 처음에는 소담하고 예쁜 한옥과 풍경들에 감탄했지만 다음엔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의 인파에 놀라며 여기 집값 비싸겠지?, 겨울에 눈 오면 여기 어떻게 올라오냐? 차는 올 수 있나? 등의 현실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며 내 질문들의 씁쓸함을 느꼈을 때부터 거긴 그저 그런 관광지였다. 나에게 이미 지루해져 버린 북촌은 엄마에게 처음 만나는 새로운 곳이 될 터였다.

  가이드의 책임감을 느끼며 맛집부터 카페 및 경로까지 야무지게 찾았다. 점심 메뉴는 일본식 돈가스 집이었다.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웨이팅이 있었다. 엄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돈가스의 달인이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돼지고기 등심을 사다가 직접 두드리고 재우고 튀김옷을 입혀 튀겨주었다. 엄마가 튀기는 돈가스는 거의 손가락 한 마디만큼 두껍고 그만큼 육즙도 가득하다. 거기에 엄마 표 특제 소스를 곁들이면 환상적인 맛이기에 밖에서 돈가스 사 먹는 돈이 아깝다. 그럼에도 돈가스를 메뉴로 정한 이유는 선택지가 별로 없기도 했고, 엄마에게 일본식 돈가스의 맛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래 유행하고 있는 것 같은 일본식 돈가스는 안심이나 등심을 두툼하게 튀겨내는데 특히 ‘히레카츠’로 불리는 안심은 동그란 모양으로 속이 덜 익은 듯 핑크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다른 곳에서 히레카츠를 접하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어서 엄마에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엄마는 맛있어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도 즐기는 모녀라서 밖에서 뭔가를 먹으면 재료부터 양념, 조리방식까지 의견을 주고받는데 누가 보면 경쟁업체에서 답사를 온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양배추 샐러드를 먹으며 엄청 얇은 채칼을 썼나 보다, 기계가 따로 있을까?라고 하면 나는 마요네즈에 다진 마늘이랑 유자청 넣은 것 같아,라고 하는 식이다. 다행히 맛집으로 부풀려진 곳이 아니어서 둘 다 아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내가 문을 나서며 밥이 진짜 맛있더라, 쌀이 좋은 건가? 했더니 엄마는 아까 쌀 포대 들어오는 거 봤는데 비싼 쌀이더라, 했다. 역시 나는 엄마를 못 따라간다.     

 

  예보 상으로 일주일에 사흘은 비가 오고, 나머지 날들은 흐렸으며 딱 하루 해가 떠 있길래 그날로 잡았는데 끝내주는 날씨였다. 화창하고 해가 쨍해서 모든 풍경의 색감이 더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우리는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운 크기의 대용량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사들고 번갈아 마시며 북촌 한옥마을로 향했다. 사실 나는 엄청난 길치라서 휴대폰 지도 없이는 길을 못 찾고, 더러는 지도도 잘 못 봐서 헤매는 일이 잦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신감은 넘쳐서 틀린 길도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도를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한참 와 있고 그런다. 분명 북촌 근처를 여러 번 다녀서 지루하다고까지 느낄 정도였는데 그날도 헤맸다. 어? 뭐지? 여기가 아니네? 어? 이게 여기 있었네? 여기 아까 왔던 데 아닌가? 이런 물음표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해실거리며 잘못 왔어? 다시 돌아가면 되지, 날씨도 좋으니까 산책하는 거지, 라며 긍정의 기운을 북돋았다. 언제나 내 잘못을 다독이며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난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날씨 탓인지 유독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다들 알록달록한 한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곱게 땋아 댕기도 늘어트렸다. 문득 고운 색의 한복을 입고 댕기를 둘렀던 시절이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는 각국의 사람들 속에서 엄마도 사진을 찍어 달랬다. 겨자색의 꽃무늬 블라우스와 한옥과 그 뒤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이 몹시 잘 어울렸다.     

 

  북촌 한옥마을 안에서 길을 찾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 그냥 길이 이어지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전망대 쪽으로 갔다가 어떤 길로 들어서니 누가 손가락을 튕긴 것처럼 사람들이 싹 사라졌다. 텅 빈 한옥마을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다 보니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3층 한옥 주택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대 여섯 개 정도의 큼직한 화분들이었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물을 주는 아주머니에게 지금 시간에 화분에 물을 주면 안 된다고 혼을 내셨다. 물을 주던 아주머니는 별안간 날아든 불호령에 움찔거리며 나도 안다고 답하고 뒤에 무슨 말을 덧붙였는데 우리한테 들리지는 않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화분 관리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인지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나는 왜 지금 물을 주면 안 되는지 궁금했는데, 엄마가 해가 쨍쨍할 때 물을 주면 안 좋다더라고 했다. 우리는 왜 안 좋은지, 물이 너무 빨리 말라서 그런지, 그럼 그만큼 더 주면 안 되는 건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엄마와 내가 공통적으로 못하는 게 있다면 화분을 키우는 일이었다.

  한 때 우리 집에도 이런저런 화분이 많았다. 선물 받거나 직접 사거나 한 것들이었는데 잘 자라는 듯싶다가도 죽어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꽤 오랜 기간 화분을 지키려고 애썼는데 어느 날 거실에서 운동을 하던 내가 꿈틀거리는 벌레를 발견하게 되고, 출처를 찾다 보니 화분이었고, 알이고 벌레고 한 두 개가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지금 집에는 화분이 없다. 소질은 없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나도 키우기 쉽다는 여러 식물들을 사서 도전해 봤지만 미안할 일만 만들 뿐이었다. 엄청난 관심과 사랑으로 돌봐도, 무관심으로 방관해도 결과는 같았다. 해서 나도 지금은 식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생명이 있는 것을 좋다는 이유만으로 키우다가 죽여서 버리는 건 인간의 이기심인 것 같았다. 엄마의 엄마인 나의 외할머니는 엄청난 식집사였다. 베란다 한가득 이런저런 화분이었다. 할머니 손이 닿으면 죽어가던 잎사귀들도 초록으로 살아났다. 엄마가 말하길, 그렇게 정성을 쏟지도 않고 물도 대충 주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자란다고 했다. 어쩐지 그 놀라운 능력을 엄마는 물려받지 못했고 나에게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희한한 부분에서 닮았다며 시시덕거렸다.      

 

  아무리 걸어도 사람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전혀 가지 않는, 그러니까 관광과는 거리가 먼 생활의 골목으로 들어선 듯했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 덕에 이마에서는 땀이 삐질 나고 있었지만 엄마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걷는 게 좋았다. 별 의미 없고 무용한 이야기들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특히 나와 엄마는 그런 이야기들을 즐겨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삼십 년의 간극도 뛰어넘고 친구가 된다. 10대 학생들처럼 별것도 아닌 것에 까르르 웃는 두 친구가 대문이 열린 어떤 한옥 앞을 지나칠 때, 문 안쪽에서 벼락같은 쌍욕이 터져 나왔다. 두 친구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발걸음을 조심히 멈추고 귀를 기울여본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역정을 내며 씨발년이라고 하자 할머니는 지지 않고 내가 씨발년이라고? 네가 씨발놈이지라고 응수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런 쌍자음이 난무하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친구는 혹시나 들킬 새라 조마조마하면서도 킥킥거리며 대문 가까이에 서있다.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들어서는 꽤나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쌍욕을 써가며 싸우는 장면을 처음 봐서 아니, 처음 들어서 매우 생경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집을 나가려고 하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다그치며 와서 대화를 하자고 했다. 우리가 골목을 쭉 내려갔다가 다시 그 길로 돌아올 때도 그들은 싸우고 있었다. 마당에는 전에 없던 캐리어 하나가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려던 게 잠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쌍욕을 뱉었지만 목소리에 힘이 조금 빠져 있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기세등등했지만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여기 와서 앉아 보라고, 얘기를 좀 해보자고 했다. 몰래 들은 이야기로 짐작컨대 할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했고, 할머니에게 숨겼는데 그걸 들킨 모양이었다. 엄마는 저분들이 아직 젊으시네,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는 보통 아빠의 큰 소리로 대부분의 일이 끝나기 때문이다. 엄마는 시끄러운 게 싫어서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했다고 하고, 짚고 넘어갈 일도 그냥 덮어뒀다. 나는 엄마의 그 점이 못마땅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왜 말하지 않느냐고 하면 엄마는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고 했다. 나는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건 내가 엄마와 닮지 않은 부분일 것이다. 내가 순응하는 엄마를 답답해하는 건 아마 내가 아빠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닮은 점과 닮지 않은 점을 동시에 품은 모녀가 북촌 한옥마을을 떠난다.      

 

  1리터 용량의 커피를 마신 탓에 당장은 카페에 가고 싶지가 않다. 즉흥적으로 창덕궁을 향해 걷는다. 엄마는 나와 다르게 길눈이 매우 밝다. 이것 또한 닮지 않은 점이다. 내가 지도를 보면서도 헤매는 사이, 엄마는 아까 갔던 길을 기억해 내고 내게 길을 알려준다. 날씨가 화창한 날의 궁은 더없이 기품이 넘쳐 보인다. 오래된 건축물이 주는 아련함과 편안함 속에서 나는 야무지게 엄마의 사진을 남겼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투어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들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게 되었고 해설사의 설명을 귀동냥해서 엄마에게도 설명해 줬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궁과 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장면은 이질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시간은 가차 없이 흐르고 역사는 유구하게 이어질 것이다. 나도 엄마도 이 세상에 없는 때에는 고층 빌딩이 옛 건물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슬프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따듯해짐을 느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땅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새삼 경이로운 기분이 들어 엄마의 손을 꽉 잡아봤다. 감동적인 땅 위에서 가능한 오래 함께하게 해달라고 어딘가에 가만히 빌어보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크루아상으로 유명한 카페에 가서 커다란 크루아상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카페를 나서며 폰을 보니 방금 전 연락이 와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우연히 유명한 빵집을 발견해 대기를 걸어 놨는데 시간이 되었으니 입장하라는 연락이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거리라 금방 찾아갔고, 몇 시간 대기를 해도 사기 어렵다는 빵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비싼 빵 가격에 망설이는 나에게 엄마는 먹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다음엔 못 먹을지 모른다고. 엄마의 화끈함에 힘입어 빵을 고르고 지하철에선 살짝 졸며 돌아왔다. 비싼 빵은 가격만큼 맛이 있었다. 엄마는 같이 가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려운 빵집 이름을 계속 외워보는 엄마가 귀여웠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어디라도 기꺼이 같이 가줄 수 있다고, 그 옛날 엄마가 내게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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