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무 Oct 20. 2023

엄마와 비싼 카페에 가는 이유

  나의 엄마와 아빠는 지독하게 가난하지도 엄청나게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절약이 꽉 들어찬 생활을 해 오신 분들이다. 절약은 우리 삼 남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분명하게 교육받았던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냉장고 문을 오래 열어두거나 자주 열지 않을 것, 외출 시 모든 전기선은 뽑고 쓰지 않는 불은 끌 것, 휴지는 최대한 아껴 쓸 것,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닐 것, 노트는 빼곡하게 쓰고 한 번 쓴 종이는 이면지로 쓸 것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이미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버려서 절약으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들은 삼 남매를 키우며 이 정도 절약은 당연하게 감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단 하나 아끼지 않은 건 식비였다. 나와 내 동생들은 어릴 때부터 아주 잘 먹고 자랐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주로 먹었고 외식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게 충분히 먹으며 컸다. 그들이 아끼지 않는 식비는 우리에게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이를 꽤 먹은 후에야 알았다. 엄마는 우리에게 비싼 한우를 먹이면서 본인 몫의 호떡 하나는 참는 사람이었다. 우리를 위해서는 몇십만 원도 덜컥 써버리지만 본인을 위해서는 몇 천 원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카페가 많지 않던 시기에 엄마는 전자동 커피머신을 샀다. 인터넷 쇼핑보다 홈쇼핑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70만 원 정도 하던 커피머신은 당시 물가로도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지만, 한 번 사두면 오래 쓸 테니 커피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밖에서 커피를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절약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십여 년 간 썼으니 엄마의 판단은 맞았다. 나도 그때부터 집에서 커피를 마셔서인지 카페에서 커피 사 먹는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집에서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다녔고, 학교 내에 있는 저렴한 카페에서 1000원짜리 커피만 마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최대한 커피 비용은 아끼며 살았는데 비싼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계속 늘어갔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 예쁜 인테리어로 SNS에 많이 올라오는 카페, 맛있는 디저트로 인기 있는 카페들을 보면 가보고 싶었다. 나도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싶었고, 디저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카페를 가다 보니 무섭게 올라가는 커피와 디저트 가격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제 유명한 카페의 비싼 가격은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와 다닐 때는 2천 원을 넘지 않는 값싸고 양 많은 커피를 주로 마셨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은 5천 원 넘어가는 커피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나의 엄마는 본인을 위해서는 지독하게도 아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엄마를 비싼 카페에 데려갔다. 어느 정도 값어치를 하는 카페도 있지만 몇몇 카페들은 양도 적게 주고 더러는 맛도 없으면서 비쌌다. 인테리어만 번듯하고 예뻤다. 커피 값으로 8천 원을 지불하면 그중 팔 할은 인테리어 비용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공간에 엄마를 데려가는 게 좋은 이유는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엄마에게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새로운 곳들도 계속 생긴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은 갈수록 빠르게 늘어간다. 그래서 계속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당연하게 해 왔던 것들을. 친구와 만나면 예쁘고 인기 있는 카페를 찾아가 크림이 잔뜩 올라간 비싼 커피를 마시고, 유명하다는 빵을 포장하는 일들을 엄마와도 하고 싶었다.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에 앉아 속 깊은 대화나 무용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도 하고 싶었다. 우리를 위해 참고 희생하느라 제대로 쓰지 못했던 돈이나 시간을 사치스럽게 누려보는 경험도 했으면 했다. 

  

  엄마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던 것을 안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친구들과 유명한 곳에 찾아가 비싸다 싶은 커피나 빵을 사 먹으며 온종일 수다만 떠는 날들. 엄마에게 그날들을 선물하고 싶었다. 선물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니까 나는 그냥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예쁜 옷을 입고 유명한 곳에 찾아가 비싼 커피나 빵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싶다. 그럴 때 엄마는 조금 소녀 같아지고, 나는 조금 먹먹해진다. 엄마는 비싼 가격에 놀라겠지만 내 힘이 닿는다면 계속해서 엄마를 비싼 카페에 데려가고 싶다. 

이전 11화 엄마와 북촌 한옥마을에 가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