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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0. 2023

엄마는 여행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

  어렸을 때 기억에 남는 가족여행을 말하라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여름 방학이라고 친구들은 바다로 혹은 바다를 건너갈 때, 우리 가족이 향한 곳은 고작 친할머니 댁이었다. 심지어 살던 곳보다 더 더운 남쪽 지방이었는데도 몇 시간씩 차에서 멀미를 하며 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사람은 나였다. 첫 해외여행은 우울하던 시기에 숨통을 틔웠고, 그 뒤로 계속해서 짐을 싸고 어디론가 떠날 궁리만 했다.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다섯 명의 가족 중에서 몸통만큼 커다란 캐리어를 산 사람도 나였고,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가장 많이 찍은 사람도 나였다. 


  많은 나라들을 다니며 먹어본 적 없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본 적 없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괌의 예전 요새였다는 곳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하늘을 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수많은 별들이 까만 밤하늘에 콕콕 박혀 하늘에 소금을 흩뿌린 것 같다는 표현을 믿게 되는 광경이었다. 달이 눈부시게 밝아서 눈을 게슴츠레 떠야 했는데 그 와중에도 별은 붉고 푸른색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희미하게 풍겨오는 바다의 습한 냄새를 맡으며 쏟아질 것 같은 별의 하늘을 보고 있을 때, 순식간에 별 하나가 둥그런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말로만 듣던, 사진으로만 보던, 그림으로만 그리던 별똥별을 실제로 본 순간 다급히 소원을 꺼냈다. 다음 별똥별엔 나와 가족의 행복을 빌고, 그다음엔 건강을, 그다음엔 친구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부르던 어느 시인의 시처럼 별 하나마다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고 이내 남는 것은 어머니, 나의 엄마였다. 별들이 뚝뚝 떨어지는 밤하늘이 있다는 걸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를 배웅하던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여행길에 오를 수 있기를 그 순간부터 간절히 바랐다.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충실히 30년 넘는 세월을 보내왔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녀에게는 챙겨야 할 남편과 자식이 있었다. 내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녀는 늘 나중으로 미뤘다.      


 “네 동생 고등학교 졸업만 하고 가자, 이제 곧 고3인데 엄마가 놀러나 가면 되겠니.”

 “네 아빠 밥은 누가 챙기니?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막내 전역하고 나면 가자, 애 군대 가있는데 놀러 가긴 좀 그렇잖아.”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다, 다음에 가자, 다음에.”     


  엄마에게 여행은 쉬이 떠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짐만 챙기면 떠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챙길 것이 산더미였다. 결혼 후 줄곧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해온 그녀였기에 다른 가족 구성원은 엄마의 공백을 낯설고 두려워했다. 새벽에 일어나 남편과 자식들의 아침밥을 차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하루는 다른 일정이 끼어들 틈 없게 빡빡했으므로 여행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쯤이야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는 엄마가 그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그런 일쯤 뒤로 미루고 여행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는 마음. 내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안일한 마음. 여행이 우선순위에 놓이기 힘든 삶도 있다는 걸 몰랐다.     

 

  사촌동생과 나는 마음이 잘 맞는 편이라 둘이서 두어 번 여행을 했다. 그러다 엄마들까지 함께 넷이서 여행하면 어떻겠냐는 대화가 시작됐고, 딸들은 각자의 엄마에게 동일한 질문을 했다.      

 

  “엄마, 여행 갈래?”     

 

  엄마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 나는 사촌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마 우리 엄마는 안 된다고 할걸. 그래도 물어는 볼게.”     

 

  설을 지낸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늘 그랬듯 핑계를 대며 여행을 뒤로 미룰 거라 생각했다. 근데 돌아온 엄마의 답은 의외로 예스였다. 놀람과 동시에 설렜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의 순위에 드디어 여행이 들어갔다는 것이. 그리고 곧 바빠졌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기 위해 여권부터 만들어야 했다. 내가 기간이 만료되어 여권 두 개를 갱신하는 동안, 그녀에게는 하나의 여권도 생긴 적이 없었다. 여권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때부터 그녀는 들뜬 듯 보였다. 사진이 잘 나왔다며 좋아했다. 여권을 만들러 가서 그녀는 여권 면수를 두고 고민했다. ‘내가 앞으로 가면 얼마나 더 여행을 가겠어.’라며 24매에 체크했다가, ‘3000원 차이인데 그냥 많은 걸로 할까?’ 했다. 나는 급하게 올라오는 눈물을 억누르며 ‘엄마, 앞으로 계속 여행만 다닐 수도 있잖아, 많은 걸로 해.’라며 체크 표시를 24매에서 48매로 옮겼다. 엄마가 너무 기뻐해서 슬펐다. 나는 고민 없이 48매를 선택했으니까. 난 당연하게 앞으로 여행을 많이 다닐 테니까. 그러나 엄마는 첫 여권을 만들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라는 시간을 생각해야만 했다.      

 

  시청을 나서며 엄마가 같이 여권을 만들러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고마울 일도 아닌데, 난 그동안 엄마 덕에 편하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는데,라는 말을 삼키며 그저 웃었다.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처음 만든 여권 하나로 엄마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런 엄마를 보며 울컥이는 감정들을 애써 참아야 했다. 이깟 여권이 뭐라고, 진작 만들걸.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닌, 여권을 만든 것만으로도 들뜨는 엄마를 나는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그래서 세워본 적 없는 여행 계획을 열심히 세워봤다. 엄마를 위해 착실하고 성실한 가이드가 되어 보기로 한다. 그녀의 첫 해외여행이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게, 앞으로 더 많이 남은 여행들의 좋은 시작이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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