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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같은 제사장들에게

결혼을 앞둔 딸과 예비사위에게

by 여운


다음 주말에 결혼하는 첫딸과 사위에게 적은 글입니다.
마음을 담아 적으려 했는데 생각처럼 쉬 되지 않습니다.
모자라는 말들 못다 한 말들은 하나님이 채워주고 보태주리라 믿고
부족한 글을 딸과 사위를 축복합니다





왕의 점, 그리고 가장 귀한 구슬(玉)


푸른 바다 가운데 거북이들이 막 모여들더니 바다 가운데 서로서로 모여 임금 왕(王) 자를 만들었어. 그때 깨어났어야 했는데……. 좀 더 자자, 10분만. 10분만 하는 사이에 거북이 한 마리가 그만 아래로 내려오더니 임금 왕(王) 자에 점을 하나 딱 찍었어. 깜짝 놀라 깼는데, 꿈이었어.


지아의 태몽은 아빠가 꾸었어. 임금왕자가 떡하니 박힌 아들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가 그만 늦잠에 빠진 아빠 덕에 구슬 옥(玉) 자가 되어 버렸다는 슬픈 태몽을 아빠가 꾸었어. 당시에 우리 교회 교인들 모두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 그 당시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떡하니 예화를 실명으로 언급하시는 바람에 지금도 나이 드신 교인들은 임금이 되어야 할 아들이 아빠의 게으름으로 딸이 되고 만 사연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엄마의 뱃속에서 내내 씩씩한 태동으로 아들임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게 만들었고, 태몽 덕에 더더욱 아들이라 굳게 믿었던 지아는 태어나서 한동안 '뚱순이', '우유병을 잡으면 항상 슝슝 소리를 낼 때까지 마시던 건강한 애기'로 자라났었지.


이제 지아가 사랑하는 남편 요한이와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현실 앞에서, 아빠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 태몽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어. 어쩌면, 왕(王) 자에 그 점 하나를 찍고 홀연히 내려간 마지막 거북이는, 지아의 삶에 가장 완벽한 '점' 하나를 찍어주기 위해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우리 곁에 온 사위 요한은 아니었을까. 당시 목사님은 나의 늦잠으로 딸로 바꾼 임금이 될 자식을 겨우 구슬로 만든 사례로 유머스럽게 설교하셨지만, (아마도 '깨어 있으라'는 설교였던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을 통해 독립된 공동체로 서는 딸을 보며 이제 와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거북이의 점을 찍게 한 것이 나의 늦잠이나 나태가 아니라, 왕 같은 자녀이지만 세상적 왕이 되려는 길이 아님을,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위와 사명을 부여하고자 손수 점찍어 주신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웅장한 깨달음이었어.





왕 같은 제사장의 소명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베드로전서 2:9



말씀은 ‘너희’라고 복수의 호칭을 쓰고 있어. 곧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세워진 지아와 요한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르고 있지. 만남과 결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너희를 '택하신 족속'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는 요한이 지아를 알아보고 두 사람이 가정을 시작하는 이 귀한 인연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구슬 옥(玉) 자가 가진 귀함과 순결함은 단순한 세상적 왕관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하나님이 태에서부터 계획하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정체성이자, 마침내 요한이라는 귀한 짝을 만나 비로소 공동체적 사명으로 완성되고 있다고 믿어. 그리고 그 약속은 출애굽기의 약속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내신 은혜를 두 사람에게 허락하신 것이야.


왕 같은 제사장, 임금 왕 자에 하나님이 손수 점찍어 만드신 이 둘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 기도에 헌신하는 제사장적 사명자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위와 책임을 지니며 살아가야 해. 세상적 왕관을 쓰려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왕 같은 자녀로서의 길을 걸어가야 해.


세상이 말하는 왕관은 늘 높아지라, 지배하라, 성공해서 남 위에 서라고 속삭이지. 하지만 우리 지아와 요한이에게 주신 왕 같은 소명은 그 길이 아니야. 제사장은 세상의 화려한 왕관 대신 희생과 중보의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야. 결혼을 통해 하나의 제단 앞에 선 귀하고 아름다운 두 사람, 지아와 요한은 이제 가정이라는 작은 제단에서 서로를 향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매일의 제사를 드려야 할 사명자야. 이 길이 어쩌면 세상이 보기에 '임금 왕(王) 자'의 길이 아닌, '구슬 옥(玉) 자'처럼 작고 빛나지만 묵묵한 섬김이 따르는 길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위를 지닌 왕의 소명은 이 땅의 어떤 권세보다 위대해.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신 그 빛을 품고, 서로의 손을 잡고 믿음의 가정을 통해 그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임금 왕(王) 자에 점을 찍어 만들어주신 구슬 옥(玉) 자의 진정한 가치야.



아빠의 기쁨 엄마의 자랑, 하나님이 찍은 점


아빠는 비록 10분의 늦잠으로 아들의 왕관을 놓쳤다고 오랫동안 놀림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 늦잠 덕분에 왕(王) 자에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점 하나를 찍어, 서로를 통해 완성될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더 크고 영원한 소명을 선물 받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아. 왕(王)에 찍힌 그 점은 실수나 나태가 아니었어. 그것은 예정이었지. 요한, 네가 지아에게 온 그날부터 말이야. 너희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온전히 세워질 하나님의 손으로 완성된 가장 귀한 보석(玉)이야.


사랑하는 딸 지아와 든든한 사위 요한아. 너희는 세상의 잣대로 측량할 수 없는, 가장 귀한 소명으로 부름 받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야. 너희 두 사람의 가정이 영원한 왕의 통치 아래서,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귀한 구슬(玉)처럼 기이한 빛을 발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아빠와 엄마는 간절히 축복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딸과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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