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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과 복제본 1

키워드로 풀어보는 예술, 예술가, 그리고 삶

by 여운

현대는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 것일까?

특히나 한국사회는 지난 50여 년간의 시간은 서구사회가 200여 년에 걸쳐 지나온 세월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버렸다. 물론 서구사회 역시 산업혁명 이후 시대 변화의 속도는 그 이전 인류가 겪어 보지 못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의 속도이었건만,


언젠가 당대 석학 이어령 교수는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가지고 디지털로 넘어가는 사회를 설명하기도 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전유성이라는 개그맨은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책을 내기도 했고,

명함에 자랑스레 이메일 주소를 넣기 시작하던 시절입니다.


지인 중 한 명에게 그가 소장한 음악파일 하나를 보내 달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저작권 개념이 불분명하던 시절이라 컴퓨터에 음악파일을 모으고 나누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내주겠노라 대답한 지인은 아무리 기다려도 파일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 이 파일을 네게 줘 버리는 나는 어떡해??"

......

그는 컴퓨터가 제일 잘하는 일이 복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시절에 우리는 음악을 아날로그 저장장치에 담아 두어야만 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음악을 들었고, 그 테이프에 담긴 음악은 복사라는 과정을 통해서야만

또 다른 저장 장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파일을 주고 나면 본인은 소장할 파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찬찬히 일러 주었습니다

내게 아무리 보내 주어도 네 컴퓨터에 그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엄청난 비밀을

그리고 다시 음악을 보내라 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음악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화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 어떤 것이 원본인지 몰라 줄 수 없었다"라고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을 복사하면 원본과 복사본이 생깁니다.

이 두 저장물의 물리적인 음악의 손실은 장비의 수준에 따라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 테이프를 복사해서 주더라도 원본은 본인이 소장하고 복사본을 주어야 했습니다.

비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료의 보관을 위해 우리는 항상 복사본을 만들어 원본은 만약을 위해 저장하고

복사본을 재생하여 보곤 했습니다.

그는 컴퓨터가 만든 두 파일 중 어느 파일이 원본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디지털을 만지면서 사고는 아날로그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났습니다.

아무도 파일의 원본과 복제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무한한 자기 복제를 당연시 여깁니다.

오히려 이제는 복제를 넘어서 창의적 응용 혹은 활용까지

시작했습니다.

Ai에 의한 작곡은 인간이 구별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그림역시 마찬가지지요.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과연 원본은 구분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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