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풀어보는 예술, 예술가, 그리고 삶
블레이드 러너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 해리슨 포드와 룻거 하우어가 출연한 작품
전설의 SF영화 ET와 같은 시기 개봉하여
흥행의 참패를 맛본 비운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우리가 이미 살아 버린 2019년입니다.
극 중에서 해리슨 포드는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로 분했습니다.
이미 살아 버린 2019년은 영화에서는 핵전쟁 이후 복제인간이 우주 행성에서 자원을 채취하고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가고 빌딩의 전광판에는 일본어들이 흘러갑니다. 간혹 한국말도 섞여 흘러나오고 안개와도 같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버블경제로 급성장하는 일본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영화에 대한 감상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여하튼 이영화는 리플리컨트를 쫓는 해리슨 포드 역시 리플리컨트였다는 결말은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 없음
그 후 20여 년 뒤 " 아일랜드"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이안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2005년 마이클 베이 감독의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의료용으로 복제된 복제인간 이안 맥그리거는 스스로 복제인간임을 자각한 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원본을 찾아 나섭니다.
그 결과 만나게 된 자신의 원본과 조우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원본은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기는커녕 그를 잡아 폐기시키려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복제인간을 쫓는 사냥꾼과 맞닥뜨린 원본과 복제본.
서로가 자신이 진짜임을 외치며 상대방에게 총을 쏘라 절규합니다.
잠시의 망설임, 사냥꾼은 총구는 결국 진짜 인간에게로 향합니다.
진짜와 가짜
선과 악의 두 가지의 기준에서
감독은 선을 택합니다. 비록 그것이 가짜일지라도
영화는 묻습니다.
"나쁜 인간"과 "착한 복제인간" 당신은 누구를 택하겠습니까?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는 본격적인 디지털의 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2005년에 만들어진 영화 아일랜드는 착한 복제인간과 나쁜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하던 SF영화들은 항상 각성한 로봇이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선악의 구별도 없고 도덕의 변별도 없는 로봇이 오히려 인간들의 오만과 원죄들을 넘어 오히려 더 선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POP아트는 고상한 예술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인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빗대어 기성의 제품이나 이미지를 차용하여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량의 복제품과 세상 유일의 작품의 변별점을 조롱합니다. 엔디 워홀에 와서는 그 조롱은 극에 달합니다.
우리는 예술의 미덕중에 하나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혹은 유일한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디지털의 시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이라는 명제가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Ai가 예술을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컴퓨터가 작곡한 곡은 인간의 작품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AI는 인간의 화풍을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을 재현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만든 것과는 달라"
" 감성이 없잖아"
CD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영혼이 없는 소리라 했고
감정과 감동이 없다, 혹은 가볍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어느 누구도 CD에 담긴 음악이 감동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던 영역의
기준도 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