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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와 공생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예술의 희망

by 여운

산업혁명


인류 전체 수만 년에 걸친 역사 속의 변화 보다, 아마도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변화가 더 클 것입니다.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젖혔습니다.

한 사람의 노동이 갖는 생산성의 변화는 수많은 도구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끝없이 증가했지만.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변화는 그 이전의 것 들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생산의 긴 과정에 전체적으로 작용하던 인간 개개인의 역할을 지극히 작은 일부분으로 국한시키며, 기계의 부품으로 인간을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이러한, 생산성의 증가는 두 번의 걸친 세계대전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끝없는 생산의 결과를 끝없이 소비하는 시장을 같이 성장시키는 무한경쟁이 시작된 것을 의미합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쓰는 만큼 시장은 성장하고 소비한 만큼 생산이 늘어나는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산업혁명은 농촌을 분해하고 가족을 분해합니다. 질 좋은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해 농촌을 분해하고 가족을 분해합니다.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엄청난 잉여와 부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지역. 계층의 갈등을 만듭니다. 2번에 걸친 세계대전 역시 국가 간 지역 간 격차가 야기한 대량살상의 비극입니다.


고도화된 산업사회는 선악의 구별마저도 경제성이 기준이 됩니다. 물질만능주의는 결국 인간성을 말살하고 마침내 스스로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참담한 결과들이 도래합니다.


오지 않은 혁명, 4차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2,3 차에 걸쳐 형식과 부문을 달리하여 삶의 형태를 바꾸어 왔습니다. 대량생산과 시장을 찾는 끝없는 질주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를 지나 이제는 지구 상의 그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의 소비를 감당해 낼 수 없는 잉여의 거대한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비는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인간들의 절대적 숫자마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고도의 이익 추구의 칼날이 스스로에게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본가의 독점적인 이익은 사실은 사회의 공동이익입니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인간이 있어야 생산과 소비가 유지됩니다. 끝없이 성장하는 생산성이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 라도 공동이익의 분배가 필요해졌습니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이유입니다.


인공지능의 성장과 빅데이터의 성장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치하기 시작했고 빅데이터는 바로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계급의 기여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자율주행, 사물 인터넷 등등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치하고 생산성은 유지하는 비밀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생산과 완전한 소비를 위한 재생, 감정과 시간 지역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 사람들은 미리 말하는가 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예술혁명, 감정 혁명입니다.


공유와 재생은 지역과 사회를 기반으로 합니다. 공유차량은 지역과 공생합니다. 재생과 공유는 삶을 나누는 과정을 동반합니다. 삶을 나누는 것은 산업혁명이 만든 분해된 가족과 지역을 회복하고 치유하고 재생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는 감정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술은 감정을 다루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쓸데없는 일, 비경제 적인 영역"입니다.


4차 산업 혁명은 삶을 완전하게 만드는 미래혁명입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 공유와 공생 재생과 회복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 다른 독점과 마지막 인간성을 말살하는 감정의 가스실을 열어젖히는 순간이 될지 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치유받아야 할 영혼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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