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은 기억 속에 머무는 감정이라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계절, 골목길의 햇살, 반지하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라디오 소리.
그 모든 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정우가 남긴 그림 속의 소녀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그때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창밖을 보고 있으면,
문득 정우가 내 옆에 앉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찍는다.
하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으려 한다.
온도, 숨결, 마음, 그리고… 사라져간 사람의 자취 같은 것들.
그림 하나를 방 한켠에 걸어두었다.
낡은 종이, 번진 연필 선,
그리고 햇살 아래 앉은 그 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아이는 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우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나는 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기억의 끝에서,
그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도,
기억의 시작에서,
그를 매일같이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