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출신의 벽 앞에서

– 차별이라는 단어와 마주하다

by 콩가루두스푼

외국계 기업.

당시 신문에도 가장 대학생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 10위권 내에 있는 아주 유명하고 좋은 꿈

의 직장이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고급스럽고, 뭔가 있어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회사 건물은 반짝였고, 복장은 자유로웠으며,회의는 영어와 일어가 섞여

흘렀다.

직원들이 쉴수 있는 고급스러운 라운지와 커피머신 그리고 깨끗하고 넓은 사무공간과

강남 테헤란로 한가운데 최고의 입지 조건 등 무엇하나 좋은 것 밖에 안보였다.

나는 이런 회사에 정규직원인 것을 큰 자부심으로 느끼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항상 임원분들이건 직장 동료들이건 “난 이회사에 뼈를 묻을 것이구요. 죽을 때까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게 나름 만족하면서 즐겁게 일하며 지내던 어느 날 정착하고 가만히 유지만 하면서

살려고 했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나는 거기서 기름 묻은 손으로 빽 없이 공채로 들어간 정비 기사일 뿐이었다.

관리직으로 입사는 했지만, 정비를 하는 현장직일 뿐이었다.

입사 초기,나는 마치 배경 속 사람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엔지니어 유니폼을 입고, 기계 옆에서 하루 종일 진동음과 금속 소리 속에 있었다.

일은 자신 있었다.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고 달려갔다. 그리고 고객이 방문해도 가장먼저

맞이하고 항상 열심히 하는 막내 정비사였다.


가끔 정비사들도 함께 하는 회의가 열리면, 문서가 돌고, 영어나 일본어가 오가고,

화이트칼라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공간에서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저 수리하는 사람, 말없이 지시를 따르고, 뒤에 서서 옵저버로 회의를 들었고

일만 잘하면 되는 그냥 한 성실한 직원일 뿐이었다.

정비를 잘하면 회사에서 진급이나 칭찬을 받는 것보단 고객이

나를 먼저 알아봐주고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토바이를 정비하고 만지는 것이 너무 좋아 항상 내 차례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정비 업무까지 도맡아서 더욱 열심히 했다.

어느 날, 회사의 행사관련 제안 하나를 문서로 만들어 제출했다.

어떤 행사를 진행하면 좋을지 그리고 운영은 어떻게 하면 될지 등 위한 간단한 아이디어였다.

내부적으로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팀장이 이를 프레젠테이션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발표 당일, 그 문서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그 아이디어는, 팀장의 이름으로 보고서로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아이디어 냈어도 팀장이 자료도 만들고 다관리하니 자기 이름으로 보고 하겠지..”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그게 이 바닥이고 나는 정비사일 뿐이지…”

나중에 팀장이 내게 말했다. “다들 그렇게 해. 어차피 네 이름 올려봤자 윗 선은 안 봐.”

“너는 일만 잘하면 돼니까 신경쓰지마.”

“신경 쓰지 말고 일만 잘 해.” 그 말은 마치, “너는 여기까지가 네 선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랜 울분과 뜨거운 무엇인가가 끓어올랐다.

머리가 나쁜 것도 기술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태도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가진 ‘출신’이라는 태생적 조건이 내 앞길을 자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거울을 봤다.

작업복에 묻은 기름 자국, 주름진 눈가, 그리고 마르지 않은 손등.

내가 이대로 평생 기름 묻은 손으로만 살아야 하나?

아니면, 이 손으로 펜을 들어야 할까?


그 질문이 내 안에서 진지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공부를 다시 하자. 스펙을 나도 만들어보자. 이대로는,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나를 바꿔주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회사생활을 병행하면서 야간대를 바로 알아보았고 마침 바로 모집기간이었기에

학비가 가장 싼 기계설계과가 있는 야간전문대에 지원하게 되었다.

학비가 싸고 야간전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나름 있는 대학교였기에 경쟁률이 높진

않았지만 있었고, 그래도 나에겐 다행인지 직장인 우선전형 제도가 활성화되고 있는

시기여서 가산점을 받고 운좋게 합격하게 되었다.

블루컬러에서 화이트컬로로 전향을 위한 큰 나만의 여정을 시작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3화12장. 전국 1명 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