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전국 1명 채용

– 스팩도 없는 흙수저출신 외국계 기업의 문을 두드리다

by 콩가루두스푼

희망이 없었다.
계획도, 자신감도, 목적도 없었다.
정직원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남은 건 자괴감허무함, 그리고 분노였다.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겸 일했던 카센터 형님께 전화가 왔다.

“이번에 00 외국계기업에서 정비사를 채용한다고 하니 거기 자네가 한번 지원해보면

어때? “

“네? 그래요? 감사합니다. 제가 지원해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연락이었다. 나는 정보도 없었고 그런 회사에서 채용한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정말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집 근처 오토바이 수리점을 지나치다가, 우연히 문 앞에 놓인 신문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흐릿한 글씨. "○○ 외국계 기업, 정비 기술자 모집 – 1명 채용"

나는 신문을 움켜쥐었다. 그 형님께서 말했던 그 채용공고였다.

그 종이는 땀에 젖고, 손끝에서 구겨졌지만 그 안에 적힌 '1명'이라는 숫자는 내 심장을 조여왔다.

전국에서 딱 한 명. 가능성은 희박했다. 전국에서 1명을 채용하는 공고였고 경쟁률도 장난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엔 진짜 될 것 같았다.’

나는 모든 걸 걸었다.
이력서를 다시 쓰고, 직업훈련원 시절 받은 수료증, 정직원 경력 증명서,
센터에서 배웠던 기술까지 내 안에 있는 모든 ‘가능성’을 종이에 눌러 담았다.

그렇게 서류를 우편으로 접수하고 운이 좋았는지 정말 연락이 왔다.


“00회사 입니다. 이번 정비사 채용건으로 면접을 보았으면 합니다.

00일까지 오셔서 면접에 임해주세요. “


“네. 감사합니다. 꼭 참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게 통화를 끝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면접일을 나는 기다렸다.

하루가 일년같이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마침내 면접 날이 밝았다.


나는 정장을 빌려 입고 구두를 닦고 생전 처음 외국계 기업 건물 앞에 섰다.

정말 큰 건물이었고 외부와 내부 인테리어는 고급이었다. 국내 회사랑은 또다른 웅장함과

고급스러운 회사였다. 고스펙의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는 회사였고 누구나 여기서 일하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면접장은 고요했고 공기부터 달랐다. 그 곳에는 이미 나 말고 다른

여러 정비사 출신의 면접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지원한 사람들이 많군.. 정말 경쟁률도 그렇고 합격하기 쉽지 않겠는 걸?”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앉았다.

그리고 곧 면접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분 정도가 들어오셨고 회사에 팀장님과

부장님이 신듯 했다.

한명씩 면접을 보게되었고 얼마후 내이름이 불려졌고 별도의 면접실로 나는 들어갔다.

그렇게 바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그 중 한분이 물었다.


“당신은 왜 이 자리에 지원했습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겪어온 현실 기름에 찌든 손으로 버텨온 날들,
그리고 내가 이 기회를 잡아야만 하는 이유.

“전, 지금까지 정비사의 길이 제 적성에 맞고 이것 말고는 먹고 살길도 없고 이일 아니면

저는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온 사람입니다. 저는 여기서 꼭 일하고 싶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하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뒤로도 몇 가지 기술적인 질문이 오갔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가진 건 배경도 아니고, 화려한 학벌도 아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정확하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일합니다.
기회를 주시면 실망 시켜드리지 않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


며칠 후. 띠리링~ 하고 내 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2차 면접이 잡혔다. 2차면접은 최종면접이라고 하였고 대표이사와 임원분들이 직접

면접을 보신다고 하였다.


그렇게 또 2차 면접일이 되어 다시 면접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어떤 질문을 하실까.”

나는 기대와 긴장감에 면접 전날까지 잠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최종면접일 나는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이날은 첫 면접날 만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면접자들이 나를 포함해 3명정도 남은 것 같았다.


얼마후 나이가 지긋하신 두분이 계신 면접실로 안내받아 나는 들어갔다.

그런데 그 면접실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공간에 희뿌연 연기 속에 두 분이 앉아계셨다.

당시는 흡연이 일상적으로 어디에서나 이루어지는 시기였기에

면접을 보면서 대표이사와 임원분이 담배를 태우며 면접을 보시고 계셨다.

한분은 일본인 부사장님이셨고 한분은 한국인 사장님이셨다.

그리고 옆에는 통역겸 비서가 함께 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물으셨다. “지난 면접에서 이미 기술관련 질문은 다한 것 같고 어디 출신이고

몇 년정도 이일을 해봤는지 말해주세요. “

나는 정확하고 또박또박 대답했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답변 했다.


그리고 곧 일본인 부사장님이 일본어로 물으셨다. 나는 일본어를 당시에는 할줄 몰랐었기에

옆에 있던 비서가 통역해주었다.

“혹시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있는지 그리고 외국사람

들과 일해본 경험 등이 있는지 궁금하고 외국어가 가능하다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순간 아찔 했다. 외국계기업이고 일본인 부사장이 있는 회사라 외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면 바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전에 회사의 대리점에서 잠시 근무할 때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캐나다 출신의 외국인 손님과 친하게 지냈고 짧은 영어로 대화도 했으며, 잠시 영어

공부도 혼자 조금씩은 했었기에

그 경험을 이야기 하고 간단하게 영어로 정말 기초적인 소개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기초 중에 기초 정도 수준의 영어였고 외국인과 지낸 경험은 한국말로 했는데

옆에 있던 비서가 일본어로 통역해서 전달 해주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일본인 부사장님은 담배를 한모금 마셨다 뱉으시면서 따듯한 미소로 알겠다고 했고 그렇게

최종면접은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 통지 손이 떨렸다.

“전국 1명 채용 – 당신이 선정되었습니다. 합격하셨고 00월 00일까지 서류와 건강검진

받으시고 준비해서 오시면 됩니다. ” 그 말을 듣고 나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회는 누가 준 게 아니라

내가 놓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에 대한 세상의 응답이었다.

그리고 이 외국계 기업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에 또 다른 문을 열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또다시 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난 또 도전하고 이겨낼 것이다. 좌절하진 않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서류전형에서만 백명이상 몰렸고 면접도 최종까지 경쟁이 치열

했다고 한다.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나는 누구나 일하고 싶어하던 글로벌 회사에 정규직원

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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