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다시 시작된 공부의 길
회사를 다니며 야간대 공부를 한다는 건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아니,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출근은 아침 8시. 정비 작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온몸의 체력과 예민한 집중력을 하루 종일 짜내야
하는 고된 싸움이었다.
엔진 소리는 귓속을 울렸고, 진동과 배기가스는 몸속까지 전해졌으며, 온종일 몸에 배는 오일 냄새는 퇴근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솔직히 말해 그대로 쓰러져 자고 싶었다. 눈꺼풀은 돌덩이처럼 무거웠고, 허리는 천근만근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몸을 일으켜, 나는 기름 묻은 손을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야간대학이었다.
누군가에겐 ‘시간 때우기’였고, 누군가에겐 ‘대안의 길’이었지만,
나에게 야간대학은 출구이자, 생존의 도구였다.
기술자로, 정비공으로, 블루칼라로 살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처음엔 부끄러웠다.
왜냐면, 그땐 나조차도 ‘고졸’이라는 꼬리표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은 대부분 4년제 명문대 졸업생들이었고, 이력서엔 토익 고득점, 자격증, 외국어 능력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의 대화엔 종종 유학 경험, 교환학생 시절 이야기, 혹은 MBA 꿈이 흘러나왔다.
그 틈에서 나는 늘 입을 다물었다. 어릴 적부터 정비소와 오토바이로 삶을 버텨온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게다가 “회사 다니면서 무슨 공부냐”는 말도 들었다.
내가 학교에 가는 걸, 도서관 가는 걸 보고 우스갯소리처럼 조롱하던 그들의 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스펙의 벽, 출신의 벽, 이름 없는 배경의 벽.
나는 이 벽들을 넘기 위해 책을 폈고, 펜을 들었고, 졸음을 견뎌냈다.
누구도 내게 다시는 ‘거기까지만 해’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칠판에 단어 하나를 적을 때마다,
나는 그 단어를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새겼다.
‘지금 이 순간이 나를 바꿔줄 거야.’
누군가는 스무 살이 지나면서부터는 머리가 굳는다고 했지만,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내 인생을 다시 쓰듯이 공부했다.
주말이면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상에 앉아도 처음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고, 집중력이 자라났다.
세 시간, 네 시간… 조용한 열람실 한켠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꿈을, ‘지금까지와 다른 인생’을 그렸다.
그리고, 어느 날 교수님이 내 리포트를 칭찬해주셨다.
“글 잘 쓰네. 이건 정말 정리도 잘했고, 잘 읽히는 글이야.”
그 한마디.
그 한마디가 나의 외롭고 힘든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돌아가는 밤길,
내 가슴은 이상하리만치 뜨거웠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말일지 몰라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그 한 줄의 칭찬이 세상을 바꾸는 말이었다.
나는 더욱 학업에 매진했다.
외국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고, 두려움 없이 편입 원서를 넣었다.
한때는 ‘나 같은 사람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그 편입.
결과가 나왔다.
합격.
“진짜 됐다…!”
그날, 나는 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졌다 .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가 아니었다.
내가 나를 이긴 순간,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제 나는 ‘전문대졸’이 아니라, 4년제 정규대학의 편입생이었다.
교정 안을 걷는 그 첫날,
마치 딴 세상에 발을 들인 것 같았다.
주변엔 풋풋한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도 많았다.
그 사이에 선 나는 이미 사회를 겪고 나온 어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처음 자장면을 먹던 소년처럼,
작고 부끄럽고, 하지만 분명히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일본어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술만으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뒤,
이젠 언어라는 무기를 갖고 싶었다.
‘언어는 또 하나의 삶이다’란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그땐 몰랐다.
그때 배운 일본어가,
훗날 나를 낯선 땅 일본으로 이끌고,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정비소에서 기름 묻은 손으로 시작한 나의 배움이
언어를 통해 국경을 넘고,
꿈의 지도를 다시 그릴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공부는 기회다. 언어는 삶을 바꾸는 무기다.
그리고,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당신도, 언제든 인생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