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낯선 땅, 나를 다시 만들다

– 일본 유학에서의 고독과 성장

by 콩가루두스푼

나는 일본으로 모든 것을 던져두고 떠났다.
회사도, 월급도, 직함도..

지금껏 쌓아온 이력과 안정된 커리어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내려놓고, 나는 일본으로 떠났다.

누가 도와준 것도 아니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환영해주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그냥 혼자였다.

처음 일본 땅을 밟던 날,
공항의 안내 방송부터가 낯설었다.


수화물 카트 손잡이를 쥔 손에
삶 전체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일본어 어학교에 등록하고
작은 원룸을 구했다.
냉장고엔 물 한 병, 책상엔 중고로 산 일본어 책 한 권.

그게 내 삶의 전부였다.


30살이 넘으면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나는 어학교를 등록하고 학교비자로

일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비를 내야만 비자가 나오는.. 즉 비자를 사서 들어간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물론 관광으로 오면 30일 비자면제가 되지만 나는 1년이상 있으면서 공부할 생각으로 간것이기에

이방법말고는 다른것은 없었다.

학교 비자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할당 시간이 정해져있었고 그것을 초과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장 생계부터 해결해야 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긴 했지만,

당시 환율은 서브모기지론이 터진뒤어서 엔화가 1400원이 넘을 때였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엄청난 환차손으로 나에게는 더욱 큰 부담이었고 원룸을 얻고 학교 등록금으로 많이 써서

여유가 많이 없었다. 처음에는 일본에 스스로 간 기념으로 즐기기도 했고 더욱

있던 여유자금마저 빨리 동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인터넷으로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속에서 운 좋게
가장 먼저 찾은 일자리는 호텔 연회장 서빙 아르바이트였다.

면접을 보러갔다. 도쿄시내에 아주큰 호텔이었다. 지하에 허름한 복도가 있었는데

그곳을 따라 도착한 조그만 사무실.


면접관을 만났다. 이분은 기무라 사무소 외주업체 사장이었다. 호텔에 파견인력을 붙여주는 아웃소싱업체. 나에게 물은 첫 질문은 한국에서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해본 경험이 있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있다고 했고 어렵지 않게 다행히 합격했다.

도쿄 시내의 고급 호텔. 하객들을 응대하고,
잔반을 치우고, 행사 끝나면 온갖 식기와 그릇을 쌓아 설거지를 해야 했다.

몸이 힘든 건 견딜 수 있었다.
진짜 힘들었던 건..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 선배들은
외국인인 나를 조심스럽게 무시했다.
실수하면 눈치를 주고, 쉬는 시간엔 말을 섞지 않았다.

이따금씩 실수가 있을 때면 한 일본인 선배는 가끔 화를 내며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기도 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 나라에는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거라도 있냐 등등 온갖 말도 안 되는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뒤에서 들리는 수군거림.
“어차피 오래 못 버틸 거야.”

그럴수록 나는 더 열심히 했다.
수건을 더 빠르게 접었고, 그릇을 더 정확히 정리했다.
언어가 안 통하면 눈빛으로, 손짓으로,
몸으로 먼저 움직였다.

몇 달이 지나자 사람들이 조금씩 말을 걸었다. 어느 날은 호텔의 직원전용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였는 데, 별로 친하지 않은 한 일본인 선배가 나에게 말을 했다.


“어이 친구 너는 왜 그릇을 들고 식사하지 않는 거야!”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사람들은 국그릇이던 밥그릇이던 왠만해서는 입에 가져다 대고 식사를 하지 않았고 그릇을 들고 먹는 버릇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릇을 들고 입에 가져다 대고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약간 다르긴 했지만 나는 이상한 것을 못느꼈지만,

일본인들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대답했다. “한국사람들은 그릇을 잘 들고 먹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그 일본인 선배는 그릇을 들고 먹지 않는 거는 개나 짐승이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순간 나는 멍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은근히 무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말에 지지않고 말했다. “보세요. 어떻게 개나 짐승과 같다고 봅니까. 엄연히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했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그릇을 들고 먹는 버릇이 거지라고 한다는 문화가 있다.”라고 말해줬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 사람은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하고 식사를 마쳤다.


그 이후 칭찬을 자주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시가 사라졌다. 그건 내겐 큰 변화였다.

낮에는 어학원, 밤에는 호텔,
주말엔 도서관과 카페.
졸다가 쓰러지고, 눈을 뜨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혼자 먹는 컵라면,
병원도 못 가고 넘긴 감기, 집에 전화도 자주 못 했던 이유는,
괜찮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어느날이었다. 쉬는날이라 방에서 혼자 낮잠을 자고 있는 데, 누군가 나를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 나 혼자있는 방인데 다른사람은 없는데.." 잠결에 놀라서 일어났다.

알고보니 그것은 지진이 온것 이었다. 좌우로 심하게 집이 흔들리고 있었다.

일본은 대부분이 도시라고 해도 목조 구조로 된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찌그덕.."하고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렸고 그 흔들림이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느낌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책상위에 있는 책과 물건들이 쏟아지고 곧 지진이 멈췄다. 이정도는 처음경험하는 강한 지진이었다.

그 뒤로도 호텔에서 가끔 바닥이 쿵쿵쿵 하고 울리는 느낌이 크게 날때도 있었는데 마치 코끼리가 뒤에서

쿵쿵하고 뛰어오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알고보니 아래위로 흔들리는 지진이었다.


그렇게 일본생활에도 적응하고 환경에도 적응하며 서서히 일본에 나는 젖어 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일본어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이제 나, 이 언어를 어느정도 내 것으로 만들었구나.’

공부 외에도, 나는 매일 혼자서 자신감을 훈련했다.
“너는 할 수 있어.”
“이대로 돌아가면 넌 또 미끄러질 거야.”
“버텨. 지금만 버티면,
그 다음엔 널 무시하던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어.”

그 말들을 매일 거울 앞에서
입 속으로 되뇌었다.


1년 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언어를 배운 게 아니다. 서른살이 되어서도 다시 한번 외국에서 나는

업그레이드 되었다. 사람을 배웠고, 인생을 배웠고,
내 자신을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비행기를 타기 전,
내가 머물던 좁은 방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나도 진짜 수고했다.
이제, 보여주자.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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