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내려놓기와 다시 도전

– 외국계 기업에서의 끝과 시작

by 콩가루두스푼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을 땐 내 인생에 드디어 봄이 오는 줄 알았다.
전국에서 단 한 명을 뽑는 채용에
나는 기적처럼 선발됐고, 당당히 정비사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엔 기술자였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기계를 만졌고, 기름 냄새와 엔진의 진동 속에서
나는 나름의 존재감을 쌓아갔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병행했다.
퇴근 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달려가
강의실에 앉았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내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런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에서 나를 영업팀으로 발령을 냈다.
나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영업팀에 한명이 공석이 생겼는데 내부적으로는

인력 충원보단, 기존 근무인력 중에서 전환 배치하자고 결정되어

기존 인력 중 내가 선택되었기에 발령이 나게 된 것이었다.


영업은 원래 판매하고자하는 제품에 대해 전문성이 높을 수록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 었고

나는 정비사였기에 누구보다 기술적인 지식도 있고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영업은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기름 묻은 손이 아닌, 말로, 관계로 이젠 관리자로서 승부해야 하는 자리였다.

고객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가교 같은 역할.
그 안에서 나는 성장했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근무하고 있던 중, 회사가 확장 이전을 하게 되었고, 직영으로 운영하던 서비스 센터와 영업을

외주화, 딜러와로 변경하여 오롯이 사무실만 있는 관리하는 업무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또한번 직무를 변경하게 되었는데, 나는 사장님 직속 부서인 기획실로 발령이 났다.
그 순간, 드디어 ‘진짜 사무직’의 삶을 시작하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한장짜리 또는 기획안을 쓸줄도 모른다고 선배에게 무시당했으며, 시키는 일

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애쓰기에 바빴다.
보고서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기획했다.

하지만.. 이런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할 줄 몰랐던 사람이었기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야간대를 다니며, 파워포인트 동호회에 가입하여 거기서 활동도 시작했다.

모임에 나가 선배들에게 보고서 잘만드는 법을 묻고 배웠다. 그렇게 나름 또 방법을 터득했다. 이후 1년도 되지않아. 나는 기획부서의 와꾸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보고서를 잘 만드는 인재가 되어 있었다.


또 한번 내가 이겨내고 인정받았다. 드디어 나도 이제 화이트 컬러의 관리자로 거듭났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회사에서 나는 또 한 번 벽을 만났다.

외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정규대 졸업장이 아니라는 이유, 출신이 정비팀이었다는 배경
늘 내게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도 냈지만 진급은 늘 밀렸다.

중요한 자리는 출신 좋은 사람, 이름 있는 학교 출신, 해외 MBA 유학 경험자에게 돌아갔다.

그때 처음, 정말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벽을 못 넘는 걸까?”
“죽을 힘을 다해도, 여긴 내 자리가 아닌 걸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얼마가지않아 바로 찾아왔다. 경력사원을 신규채용하여 바로 옆팀과 내가 있는 부서에도 한명씩 들어오게 되었는데 몇 달지나지 않아 그 경력사원들은 나보다 빨리 진급을 했다. 그때의 나는 그들보다 이 회사에서 4년 이상의 근속을 하였고 보고서도 잘 만들고 일 잘한다고 칭찬도 받는 터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전무님께 달려갔다. “어떻게 된겁니까. 제가 왜 진급이 안되고 저사람들이 왜 올라가는 겁니까.” 그러자 전무님이 말씀 하셨다. “너는 학벌도 안되고 외국어도 안되잖아. 미안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가 되자.”

그래서,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회사도, 커리어도, 안정된 수입도 놓아두고, 혼자, 오직 내 힘으로 다시 시작하는 길을 선택했다.

솔직히 내가 더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이나, 정말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롤모델이나 어떤 희망이 보였으면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겐 희망도 배울 점이나 배울만한 선배가 많이 없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도와주려는 능력있는 선배들도 있었기에 아쉬움과 회의감을

모두 느끼며 나는 그렇게 힘들게 들어가서 버티던 회사를 5년만에 떠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평소에 주구장창 저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겁니다. 제 평생직장이에요 라고 항상 말하던 내 꿈이었던 직장을 그렇게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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