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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Nov 25. 2022

"엄마"라는 말 한마디

오늘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오전에 오는 전화는 대체로 엄마가 가게 포스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만 엄마가 계속 알아듣지 못하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나의 목소리에 짜증이 자꾸 섞인다. 

결국은 40분 걸리는 엄마 가게에 갔다. 

문제의 원인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고, 그러나 컴퓨터를 잘 못하는 엄마가 찾지 못할 만한 것이기는 했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조금 미안해진다.

엄마는 한상 가득 밥을 차려주신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면서 이렇게 짜증이 나는 일은 드물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고,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늘 전제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이 일을 10년 넘게 해와서 뭘 모르는 것, 몇 번을 말해도 이해 못 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낯선 디지털 기기들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 짜증이 나는 것은 엄마가 혹여 내가 연락이 안 될 때 무슨 일이 생길까,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갑을 지나 보낸 엄마에게 뭘 모른다고 짜증을 내는 것은 역시나 죄책감이 생긴다.


엄마보다 두 살이 많은 시어머니는 스마트 뱅킹도 하시고, 한글이랑 엑셀도 쓰시는데 엄마는 문자를 보내지 못하신다. 

시어머니는 사무직을 아주 오래 하셨고, 엄마는 아주 오래 요리를 하셨다. 

당연한 일인데도 자꾸만 엄마에게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도 모르는 게 많고, 그때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데 남편은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법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새삼 더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심쿵이가 이제 한 달 정도 있으면 세상에 나온다.

심쿵이를 키울 때 무슨 어려움들이 닥칠까 한 번씩 생각해 보곤 한다.

문득 심쿵이가 "엄마"라는 말을 하게 될 때, 얼마나 큰 감동이 몰려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서는 깨달았다. 

아! 아기가 "엄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엄마는 아기에게 얼마나 많이 "엄마"라는 말을 가르칠까?

아기가 말을 못 한다고 화를 내는 엄마가 있을까?

아기가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엄마는 얼마나 많이 손을 잡아줄까?

우리 엄마는 나의 말 한마디, 나의 한 걸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지나 보냈을까?

그런데 왜 나는 엄마가 포스를 사용하는 법을 몇 번 가르쳐 달라고, 배달의 민족 홈페이지 사용법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렇게나 짜증이 났을까?


마흔이 되어서야, 아기를 낳기 한 달 전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인내를 하며 살았을지를 생각하다니 참 못났다. 

엄마는 아마 점점 모르는 게 많아질 것이다.

이미 나도 학생들은 쉽게 쓰는 어플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열 살도 채 되기 전에 새로운 기술에 대해 아이에게 먼저 묻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와 엄마는 24살 차이가 나는데 나와 아기는 39살 차이가 난다. 

앞날이 캄캄해지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나의 행동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시간이 조금 더디 가서 엄마가 조금 느리게 늙으시면 좋겠다.

시간이 조금 더디 가서 심쿵이에게 내가 조금 더 필요한 엄마이면 좋겠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하루하루 더 감사하며 더 귀하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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