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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Apr 23. 2024

파도시집선_015 다정


치환  


어떤 다정함은

서늘한 안부의 얼굴을 띤다     


해사한 미소로 무사를 비는

동여맨 옷깃 사이

그늘진 마음이 새어 나올 때     


들키기 싫은 속내를

어슴푸레 목도한 자의

묘연히 하강하는 마음이다     


어떤 다정함은

가엾은 타자를 향한

연민으로 채워진 허상이다     


나와 너를 잇지 못하고

너른 공터를 배회하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환영이다     


어떤 다정함은

허공을 향해 부유하는 손짓이다      


위로할 수 없는 못난 마음으로

도돌이표 같은 희망과

사그라질 온기를 나눈다      


제때 쓰이지 못한

가엾은 다정의 불씨를 모아

마음의 정류장에 어언 창窓을 낸다    

  

하염없을 시간을 머무르고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무던한 작별이 오가는 곳     


붙잡으려 할수록 휘발되는 생生 앞에서

유한히 속박되지 않으려

마땅히 승차를 기다리지만,

실은 오래 정박하고 싶은     


어떤 다정함은

한낱 무해한 배웅 뒤로

나지막이 솟아오르는 마음이다     



*파도시집선 다정에 수록된 시입니다


<책 소개>


 사랑이 바다라면 다정은 해변에 퇴적되는 모래 같습니다. 손아귀에 쥘 새도 없이 빠르게 빠져나가기도, 다정 사이에 숨은 유리 조각에 속아 피부에 박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로 사랑의 파편들은 태양 빛에 달궈지다 나의 발을 따뜻하게 감싸고, 모서리 없이 둥근 다정은 포근히 나를 받쳐줍니다. 가끔은 광활한 도화지가 되었다가, 파도 몇 번에 금방 아물었다가... 사진 속 남아있는 해변은 좋은 추억이 되고, 종종 나의 도피처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다정은 어떤 모양인가요? 단어에 온기를 넣는 일. 이건 우리들의 다정입니다.


참여작가들의 인세는 모두 매년 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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