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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Sep 20. 2022

꺼내어 맛보는 가을

공기 반, 독백 반


 이맘때 꺼내어 보는 시 한 편이 있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존재하는 옷가지들처럼, 한낮의 태양은 아직 익숙한 반팔을 부르지만, 아침이면 부스스한 머리칼만큼 경황없는 정신으로 아이 등굣길에 주섬주섬 바람막이를 챙기는 계절.


 이른 아침의 선선한 공기는 여름 내 덥혀진 체온을 식히기에 적당하고, 아직 가시지 않은 한낮의 열기는 뜨겁던 여름날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의 공기가 다르고, 아침과 낮의 온도차는 유난히 대비된다.

 모든 절기의 경계가 그렇지만, 여름을 겨우 견디다 맞는 가을이야말로 내게는 지독한 기다림이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과 요즘의 날씨 이야기를 한다. 할 말이 없어 꺼내는 말들이 아닌, 온몸으로 체감하는 계절의 경이로움이 절로 배어 나온다. 그럴 때 날씨는 사사로운 안부를 대신한다.

 아직 선풍기를 넣지 않았는지, 얇은 홑이불 대신 차렵이불을 꺼냈는지, 아이들의 긴팔 옷을 꺼냈는지 자연스레 묻는 날씨에 관한 궁금증은 그대로 서로의 안부가 된다.

 '당신이 편안하게 잘 지내는지 몹시 궁금하다'의 또 다른 말과도 같은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사는 데 바빠 소원했던 누군가와의 거리 사이에 촘촘한 마음이 자리 잡는다.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 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빡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연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 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 조용미, <기억의 행성> 중 '가을밤'


 두 해가 넘도록 잊고 있던 마늘꿀절임은 그사이 마늘과 꿀의 경계가 사라진 맛으로 변했다. 알싸한 마늘의 향이 꿀의 달콤함에 절여져 매운맛은 사라지고, 꿀에는 또 은근한 마늘이 스며있다.


 마늘이고 꿀이지만, 마늘도 꿀도 아닌 것들을 떠올렸다. 옷장 깊숙이 넣어 둔 철 지난 코트가, 머쓱한 미니홈피의 일촌이, 일상에 쫓겨 잊고 지낸 여러 인연이, 어쩌면 매일 보는 가족이 마늘도 꿀도 아닌 채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여름과 가을이 적당히 범벅된 틈새 사이로 변해버린 마늘꿀절임처럼 달라진 계절이 서늘한 공기를 머금고 있다.


 이맘때면 꺼내어 보는 이 시의 형과 질 만은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나를 맞아준다. 그러면 서너 해 전과 다름없는 반가운 마음이 부풀어 '가을밤'을 거듭 눌러 담는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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