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브금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뜨거운 한낮의 여름 바다는 떠올린 적이 없을 만큼, 여름이란 계절을 의식적으로 망각하며 지낸다. 폭염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곁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계절은 성큼 한발 앞을 내딛는다.
왜 유독 피하고 싶은 시절은 여름일까. 찌는 듯한 무더위와 습도를 잊을 정도의 역동적인 계절적 취미를 태생적으로 즐기지 못하는 탓에 더위를 피해 에어컨 풀가동하는 실내만 배회하는 이 계절의 나는 무력감과 일시적 뽀송함으로부터 여러 날 자유롭지 못하다.
날씨 앞에 번번이 굴복하는 모양새가 주는 묘한 패배감 같은 것이랄까.걸어서 환장속으로의 시절이 부디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남은 여름의 끝자락을 더욱 힘껏 텅 비우며 지낸다.
하지만 소진하는 마음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 시기 나름의 특효약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캐롤 듣기인데 말복을 지나 8월 끝자락을 향해 갈 무렵 궁극의 쿨링 선곡병(feat.캐롤)이 슬슬 도지기 시작한다. 캐롤은 단순히 청량감을 주는 노래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서서히 빙하기로 소환하는 확실한 효력이 있다.
끝이 날듯 말 듯 하면서도 가시지 않는 더위에 지칠 때쯤이면 남은 한낮의 여름을 가까스로 보낼 수 있는 그 밖의 동력이 필요하다. 극심한 폭염을 버티고 이제 다 끝났겠지 싶은 더위는 그 후 얼마간 곁에서 더 맴돌다 간다.
이 계절에 듣는 캐롤은 영롱한 불꽃놀이 같다.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조우한 친구 같기도,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을 통해 발견한 뜻밖의 루틴이 되기도 한다. 두 계절을 앞서 듣기 시작한 탓에 정작 12월이 되면, 캐롤 효과가 짜게 식어버리는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무계획형 인간이 부지런해지는 몇 안 되는 지점인 것은 확실하다.
하나 둘 꺼내 입던 긴소매 두어 벌로 족히 넉넉하던 뜨거운 구월이 저문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처럼 들쑥날쑥한 모양을 견디며 애써 나를 맞추던 일들을 이제는 접어두려고 한다.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