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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파 Apr 05. 2024

아빠 옆에서 잠을 잔다는 것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우리 가족이 됐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밤'이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휴식 또는 휴식을 위한 무언가를 한다. 어둡기에 안락해지거나 혹은 어딘가에 더욱 집중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빠져들기 쉬워진다. 바로 이 시간,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겪는 첫 성장통은 여기에 있다.     

내가 아닌 온전히 타인에게 집중한다는 것. 그 타인에게 보상을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으면서도 일방적으로 주는 것 그리고 주고 싶은 것. 일상생활에서 이를 겪으며 지낸다는 것은 평범한 성인에게는 해당치 않는 일상이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누군가 '재워줘'야 한다. 요즘은 ‘어떻게’ 재워야 할까를 고민하는 세대이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이 시기에 금세 다시 잠이 들곤 했다. 딱히 대단한 게 아님에도 나는 종종 뿌듯함을 느끼기도 넘어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표현 수단이 ‘울음’밖에 없는 아기의 요구를 맞고 빠르게 파악하여 해결해 줬다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금세 잠들지 못하는 아기가 부모의 탓은 아니다. 이 세상엔 다양한 어른이 존재하듯이 아기들도 다양하다. 저 시기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몇 가지 안되는 수단들로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욕심이다. 아기들은 울고 자고하며 큰다. 이렇게 보니, 아마도 나는 이런 식으로 스스로는 응원하는 방법을 찾았나 보다. 때에 맞춰 적절히 생각을 바꿔가면서 말이다.

     

 요즘 '갓기(God기)'라고 불리는 아기들이 있다. 부모를 편하게 해주는 귀한 아기. 그 아기가 우리 아이였다. 때때로 스스로를 달래주기 위해 ‘우리가 잘 돌봐줘서 그런 거지’라고도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태어남과 동시에 잃어버린 긴 밤을 부모에게 ‘잠시’ 돌려주는 시기를 ‘통잠’을 잔다고 한다. 보통 100일쯤을 전후로 찾아온다. 우리는 60일 전후로 맞이했다.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는 돌까지 잘 잤으니 대략 9개월간 수월한 밤을 보냈다. 물론, 그 사이에 이런저런 고비들도 여러 차례 있었다. 두상을 위한 아기 잠자리 교정 때문에, 작은 기저귀 사이즈로 새버린 소변이라던가 등의 그 시기의 부모와 아기만이 겪을 일화들. 지금은 뒷동산인데 그 당시에는 한라산이었다.

     

돌 쯤을 기준으로 아이가 새벽에 다시 자주 깨기 시작한다. 아이가 새벽에 울음 시작하면 울음소리가 아닌 '엄마'라는 단어로 서러움을 방출한다. 심금을 울린다. 당시에(지금도) 옆 방에서 자고 있음에도 아이의 '낑'하는 소리만으로도 잠이 깬다. 그런데 한국인의 언어로 부모를 찾는 아기를 맞이하는 부모는 속수무책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얼른 가게 된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대단한 걸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저 옆에 누워있어 주는 것. 그것으로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자장가나 부드러운 토닥임 등은 이상하게 불편해했다(자장가를 불러주면 오히려 슬퍼서 울어버렸다.). 우리가 겪는 것은 새벽에 잠에서 수 차례 깨서 아이 옆으로 가서 같이 누워주는 행위를 매일 반복하는 게 다였다. 글로 써 놓으니 참 별일 아닌 듯한 게 아쉬울 따름이기도 하다. 꽤나 힘들었는데 말이다.     

 아이의 옆에 누워서 새벽을 보내면 주로 같이 잠들 때도 많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의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 가기도 한다. 지금도, 나의 어린 시절에도 고향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여름이면 아버지와 나는 거실에 대나무 자리를 펴고 잤다. 집 안에는 여러 대의 선풍기들이 돌아갔다. 벽에 2대, 피아노 앞에 1대. 바닥에서 자서 등이 꽤 배겼을 텐데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 침대에서 편히 자는 나는 당시의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서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다. 가정집에 벽걸이 선풍기가 백색소음으로 돌아가고, 대나무자리를 깔고 자는 아버지와 아들. 귀뚜라미 소리나 개구리 소리만 첨가되면 지브리다. 물론 실제로는 벌레나 개구리가 나오면 기겁을 할 텐데.      


 나의 고향 집은 골목길 안 빨간 벽돌 2층 집이다. 지금은 그때의 작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가 생기면서 이웃들이 사라지고 대문 앞의 골목길이 차도가 되었다. 집 내부는 아파트같이 깔끔한 구조가 아니었기에 밤이면 집 안에는 '구석'들이 참 많았다. 그런 '구석'들은 밤이면 더욱 까맣게 물든다. 자다 깬 어린이의 눈에는 아이러니하게 어두울수록 유독 눈길이 더 갔다. 새벽의 적막함 속 시기적절한 냉장고의 큰 작동음,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의 끝은 어둠에 가려져 있고,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무언가들. 그것들이 힘차게 협업하여 나의 어린 시절 여름밤을 무섭게 했었다. 그렇게 뜨기 싫은 눈이 떠진 새벽은 속절없이 무서움과 씨름했어야 했다.     

그럴 때면 옆에서 편히 주무시는 아버지가 나의 방파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착하게 자라나던 어린이에게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고 집 안에서 하필 내 발을 간지럽힐 것 같다던가 혹은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보기 직전일 것만 같은 순간들이 다가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버지를 깨울 마음을 장전했었다. 그것은 나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버지가 귀신과 싸우는 방법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다 못해 두려움마저 희석될 때쯤 귀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전까지 나름의 노력을 들였다. 그건 바로 아버지의 숨소리를 따라서 숨을 쉬는 것. 아버지의 들숨을 따라 나도. 아버지의 날숨을 따라 나도. 자연스럽게 나보다 긴 호흡을 따라 하다 보면 무뚝뚝한 방파제에 쏘옥 들어가지곤 했다.     

밤중 잠에서 깬 아이 옆에 누워서 아이를 달래줄 때면 이런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종종 떠오른다. 그러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게 그 시절의 나처럼 '아빠의 숨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 크게 숨을 쉬어 보기도 한다. 아빠는 옆에서 편히 숨을 쉬고 있다고, 이곳은 편히 잠을 자도 되는 곳이라고 말이다. 때때론 가슴도 조금 들썩이며 과장되게 숨 쉬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잠이 든 아이를 확인하고 나의 안락함을 찾아 성급히 움직이는 날이 있다. 어린 나에게 들렸던 적막함 속의 소음이 아닌 매트에서 떨어지는 나의 엉덩이가 '바스락', 살금살금 까치발로 걷지만 바닥에선 '쩌억', 그리고 온갖 관절에서의 ‘우드득’. 아이는 정말 귀신같이 눈을 뜨고 울어버린다.

     

그렇게 나는 얼른 다시 아이 옆에 누워 숨을 쉰다.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그리고 나도 내 숨소리 같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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