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은 계엄에 관한 책이 아니다. 계엄에 관한 내용은 책의 마지막 챕터 30여쪽에 불과하다. 그 대신 책에는 1979년이라는 한국현대사의 의미심장한 시점에서 한 해 동안 서울의 한 대학에 일본어강사로 부임한, 지한파라 부를만한 20대 일본인 남성이 본 광범위한 당대의 풍속과 문화계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제자와 더불어 그 해 여름 광주를 비롯한 전남지역을 여행하기도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논픽션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최인호, 하길종, 한운사, 임권택, 전채린 등 많은 당대의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여 현실감 있게 읽힌다. 45년 전의 역사와 서울의 모습을 한 외부인의 눈으로 다시 돌아보는 느낌으로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묘사는 얼마나 아득한 향수 또는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서울 대학생 중 캔 맥주를 마셔본 적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방 커피는 인스턴트 외에는 없고 유통되는 음반은 대부분 판권을 무시한 해적판이며 음반재킷은 원본을 그대로 선명하지 않은 푸른색 잉크로 인쇄한 것이다. 재즈는 미군 기지 내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은 아메리칸 팝에 멋대로 한국어 가사를 붙여 어두운 술집에서 금속 젓가락으로 막걸리 잔을 두드리며 자기 나라 노래인 줄 알고 부른다.”
한국과 서울에 대한 저자의 탐색은 그해 10월 계엄령이 발동하고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끝나게 된다. 한국인의 정체성, 70년대 문화와 영화판, 한일관계, 일본인이 바라보는 한국 등의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북펀딩에 참여했는데 나름 의미있는 책인 듯 하여 뿌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