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미국소설 '재능있는 리플리'(1955)를 읽었다. 알랭 들롱, 맷 데이먼이 주연했던 영화를 재미있게 본 터라 줄거리를 다 안다고 생각해 가볍게 집어들었는데,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갔다. 역시 영화나 연극은 인물의 심리와 내면 묘사에 있어서 결코 소설을 따라잡을 수 없을 듯... 시시한 사기로 별볼일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리플리는 어느날 우연히 유럽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설득해 미국으로 데려와 달라는 한 선박업자의 제안을 받고 유럽행 배에 몸을 싣고 뉴욕항을 떠나는데... 이탈리아에서 아들 디키를 만나 그와 친해지고, 우연히 그와 그의 친구를 죽이고, 결국 그를 대신해 엄청난 부를 물려받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는데, 단지 '범죄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인물들의 내면묘사가 너무나 생생하고 매력적이며 플롯도 정교하다. 유럽을 많이 여행하고 말년에 스위스에 정착했다는 작가의 유럽 각지에 대한 섬세한 묘사도 또다른 읽을 거리!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잘 아는 리플리 이야기는 전체 서사의 첫 장에 불과하고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후에도 '지하의 리플리', '리플리의 게임', '리플리를 따라온 소년', '심연의 리플리' 등 네 편의 이야기를 더 썼다는 것이다. 책은 책에 끊임없이 이어져 우리가 읽고 아는 것은 결국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