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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Mar 27. 2023

식물은 살이 찌지 않는다

서른 한 살 생일이었다. 오랜 친구는 내게 뻔한 선물은 주기 싫다며 수경재배 식물을 보내왔다. 처음 받아보는 기르는 식물 선물에 조금은 당황했었다. 선물 받은 이 식물이 말라 죽으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식물과 함께 온 설명서를 외우려는 듯 읽었다. 설명서는 단순했다.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물을 갈아주고, 햇볕을 최대한 쬐면 된다는 간단한 규칙만을 알려줬다.      


그렇게 집안에 새로운 생명을 들인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꼭 화분을 바라보곤 했다. 한번 나에게 온 이상 빨리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잎사귀가 하나하나 말라가기 시작했다. 처음 말라가기 시작하던 잎은 애써 무시했지만, 다른 잎도 시들어가며 초록빛을 잃어가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기어이 나는 식물을 말려 죽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화분을 꼭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길이 없기에 일단 응급실로 달려온 환자처럼. 인터넷에선 각양각색의 진단이 나왔다. 물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영양제를 너무 자주 넣어서 잎이 시든 거라는 말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진단을 받던 도중 ‘식물은 살이 찌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무덤덤하지만 식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글은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조금은 식물에 무관심해질 것’     


당황스러운 해법이었다. 지금도 화분 속 식물은 시들어가는데, 이를 해결하지 말고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라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해법을 제시한 이유를 계속 읽었다. 글쓴이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식물은 예민한 생명이기에 조금이라도 과하거나 부족하면 바로 시들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보통 집에서 키우는 화분이 죽는 이유 대부분은 너무 과한 관심이나 지나친 방치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식물이 시드는 이유를 찾으러 온 사람이면 화분에 온갖 정성을 쏟은 사람일 것이 뻔하므로 조금은 무관심하게 두라는 말이었다. 그 뒤에 글쓴이는 ‘식물은 살이 찌지 않는다. 그저 서서히 시들어가며 당신의 손길이 너무 과했다는 말을 전할 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넷에서 마주한 해법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주기보다 하루에서 이틀 정도 늦게 물을 갈아주기도 하고, 매번 넣던 영양제도 넣지 않았다. 화분을 들여다보며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쬐도록 창가에 두는 일도 멈추었다. 그 결과 화분 속 잎이 하나하나 시드는 일은 멈추었다. 그렇게 늦가을에 도착한 화분은 푸른 잎을 유지하며 겨울을 지났고, 봄을 맞았다.      

화분은 다행히도 푸르게 살아남았다. 


작은 화분과 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천천히 되짚어보다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어쩌면 살이 찌지 않는 그 무언가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쏟아낸 마음에 결국 시들어버린 수많은 관계나 너무 무관심했기에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내게 남아있지 않은 수많은 관계에게 나는 얼마만큼 마음을 쏟았을까. 병적으로 관계 단절을 두려워하는 내가 사람들과의 사이를 모조리 시들게 한 건 아닐까 두려웠다.   

  

‘프랭크’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주인공이 ‘존’이 괴상한 탈을 쓰고 특이한 음악을 하는 ‘프랭크’를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야기다. 프랭크는 밴드 멤버들과 자기만의 음악을 하며 지내고 우연히 존도 밴드에 합류하지만, 존이 올린 영상으로 인해 프랭크와 밴드는 페스티벌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존의 욕심은 멤버들을 떠나게 하고, 결국 프랭크는 존과 페스티벌 무대에 둘이 오른 뒤 발작을 일으키며 도망친다. 그리고 나중에 존이 다시 찾은 프랭크는 헤어졌던 밴드 멤버들과 재회하며 즐겁게 자신만의 음악을 다시 시작한다.     


식물을 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올렸고, 그러던 중 프랭크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어쩌면 관계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못된 말은 “다 너를 위한 거였어”라는 말이 아닐까. 프랭크의 재능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결국 모든 걸 망친 존은 속으로 저 말을 되뇌었으리라. 나 또한 놓쳐버린 이들에게 “너를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 너에게 얼마나 많은 마음을 쏟았는데, 어떻게 나를 두고 갈 수 있느냐”고 되묻곤 했으니까.     


식물이 시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과도하게 퍼부은 영양제가 결국 화분 전체를 말려 죽였던 것처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잡고 싶은 이에게 쏟아낸 나의 마음이 결국 관계를 망친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어쩌면 더 이상 화분을 시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으니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도 망치지 않을 수 있길.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심히 소망해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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