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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Oct 12. 2020

우리집 간호사

나는 아프면 꽤 화끈하게 아픈 편이다. 온 몸의 근육이 사르르 시려오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빨을 덜덜 떨면서 열이 펄펄 끓기 시작하는 이런 오한을 하루에 두 세 차례 겪은 후, 첫끼를 죽으로 시작해 두번째 끼니에 밥을 성공하면 나의 몸살은 짧고 굵게 끝난다. 

손도 쓸 수 없이 아픈 날에는 덜컥 내가 무슨 병에 걸린거면 어떡하지, 라는 겁이 들기도 한다. 둘째 출산이 인생 역대급으로 아팠는데, 그때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고통이 이 공간에서 한 시간 정도면 끝날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집에서 아플 때는 그런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일년에 한 두번씩 연말정산 하듯 아프고 낫고 하는걸 30년을 살아왔음에도 아직도 매일 아플 때 마다, 운동 좀 할껄 - 나 진짜 큰 병이면 어떡하지 - 이 두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그 때만 그렇게 내 주변의 아픈 사람들의 감정을 그제서야 알아챈다. 아픈건 진짜 무서운거구나, 아픈건 진짜 힘든거구나,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도 나고, 매일이 아픈 할머니도 생각나고, 맨날 여기저기 아파 병원 다니는 내 친구 김씨도 생각난다. 

그럼에도 나의 감기몸살을 이렇게 짧게 끝낼 수 있게 온 몸을 세팅해준건 할머니, 우리 할머니 윤이씨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가족바라기 상인데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못 드시고 컸는지 몸이 허약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현재 수십년 동안 지병으로 인해 혈압약, 위장약, 동네 내과 의사, 간호사, 동선은 모두 파악하는 내공도 있다. 당신이 아파보아서 그런지 아픈 사람들의 마음과 심정, 심지어 환자가 표현하지 못하는 몸 상태까지 정확히 파악한다.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안나와서 그렇지, 우리집에서만큼은 백의의 윤이씨인데, 내가 받아 본 간호 중 가장 퀄리티가 높다.

일단 몸살이 시작도 되기 전, 아마 나의 백혈구가 침투한 세균들에게 서서히 지고 있을 시점 쯤, 할머니는 알아챈다. 그런 할머니의 괜한 관심이 귀찮아서 무슨 소리냐고 소리를 빽 지르고 두 세시간 뒤면 정말 아프다. 꼭 벌 받은 것 처럼. 환자는 들어왔고, 간호사는 분주해진다. 온 몸을 주무르고, 침을 가져와서 손을 따고 (나의 몸살은 대부분 급체에서 오기 때문에), 쌍화탕을 뎁혀서 대령하고, 계속 물수건을 갈아 머리에 얹어준다. 밤이 되면 될수록 지칠만도 한데, 우리집 간호사는 간병인도 겸임 하기에 나의 손길 한 번에도 금새 일어나 다시 물수건을 갈고, 다시 약을 대령하고, 다시 팔 다리를 주무른다. 밤새 그 손길을 받으며 열이 두 세번 오르락 내리락 하면 아침에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나고, 정말이지, 개운하다.

이제는 내가 아플 때 새로운 간호사 우리 남편이 등장했고, 그의 간호가 전혀 특별하지 않기에 (심지어 애들 밥 주기 싫어서 아픈 척하는거 아니냐는 그의 대사에 나는 정말 울었다. 그래야 그가 믿는다.) 이제야 할머니가 특별하다는 것을 느낀다. 할머니는 이제 내가 아플 때 밤을 새며 나를 지키지 못한다. 그저 애만 동동 태우고, 걱정 삼매경을 하다 진짜 병이 덜컥 난다. 이제 내가 아프면 오히려 나보다 더 아프기만 한 할머니를 보면서 이제 나의 특별한 간호사와 작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그래도 이번에도 나의 몸살 기운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그 누구도 아닌 윤이씨였기에, 이미 손 딸 침은 들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아직 간호사 가운은 벗겨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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