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라맘 Jan 07. 2024

나도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삼남매의 첫째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또 한 아이의 엄마로 전환되는 삶

2023년 12월 22일.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특별한 하루.

아침부터 수원은 살이 애리도록 추운 겨울 날씨였다.

나는 재능기부 형식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2세에서 11세 사이 아이들을 위한 영어 구연동화 시간을 준비했다.

아침부터 분주히 미용실에 가서 아이들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머리 세팅도 하고 (소개팅을 나갈 때나 면접을 볼 때조차 머리 세팅을 받아본 적이 없건만...)

여자아이들은 예쁜 선생님을 좋아한다길래 예쁘게 매니큐어도 바르기로 했다.

YTN 글로벌 리포터로 활동하던 당시 받았던 파우치는 두꺼운 천에 짱짱해서 매니큐어들을 보관하기 좋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안에 있던 하늘색 매니큐어가 깨졌고, 결국 난 파우치를 버려야했다.

가벼운 인간 관계들 역시 하늘색 매니큐어처럼 결국 다 깨지기 마련인데, 버리고 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었다.

함께 해온 시간이 얼만데... 소중하다 생각했던 친구들이 한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사실은 가볍디 가벼운 인연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아파하던 중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수원의 하늘은 맑았고, 영어 구연동화를 앞두고 있었기에 제로 맥주로 입만 축였다.

그렇게 시간은 오후 세시 반.

유투브로 모든 세상을 이해하는 요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유투브에 나온 내 영상들을 틀어주며 내 소개를 했다.

Wishtrendtv에 출연했던 10년 전 영상, YTN 리포터 하던 시절의 영상 등...

그들은 내가 한창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가고 있던 당시 태어나던 어린아이들이었고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어머니들은 출산과 육아를 겪어낸 인생 선배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또 태어나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바이올린, 고등학교 시절 오케스트라에서 제2바이올린 자리까지 올랐지만 내게는 중저음의 비올라가 더 어울렸다.

예민하고 섬세한 하이피치의 바이올린보다는 낮고 때로운 중후한 음색을 자랑하는 비올라가 난 참 좋았다.

낙원상가에서 20만원 주고 저렴하게 구매한 연습용 비올라로 서툰 솜씨지만 투박하게 섬집아기를 연주해주었고

아이들은 처음 본 악기를 신기해하며 초집중하고 내 부족한 연주를 들어주었다.

늘 혼자 집에서만 독학으로 연주해온 실력이라 남들 앞에 서는게 어색하고 또 부끄러웠지만 모든 이들이 열심히 박수쳐주고 응원해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내 친구 파볼쌤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더욱 재밌는 시간을 선사했다.

196센치의 큰 키를 자랑하는 파볼쌤을 보며 모든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아이들을 위한 재능 기부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감동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선물로 받아왔다.

꼬맹이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사탕 두어개를 쥐어주고 가거나 작은 지우개를 선물로 주거나 쭈뼛쭈뼛 내 주위로 와서는 선생님~ 저 영어이름 지어주세요~ 라고 했다.

귀여운 꼬마 아이들과 함께하니 나조차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


집에 와서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막걸리를 한잔 하려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았다.

10여 일 전에 산부인과에 들러 생리유도주사를 맞았는데 (다낭성이라 생리주기 불규칙) 왜 아직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빠더러 퇴근길에 테스트기를 하나 사다달라고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첫 소변으로 검사.


결과는.... 두줄.


믿을 수 없었다. 대체 왜...? 언제...? 음....? 내가???

응????? 어쩌다가???? 음?????????????

오빠의 반응 : ???????????????????????

우리는 믿을 수 없었고, 테스트기가 잘못된 거라 생각했다.

오빠는 새벽에 눈길을 뚫고 집 앞 편의점이 아닌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다른 편의점에 가서 또 하나의 테스트기를 사왔다.

결과는.... 빼박 두줄.


둘다 당황;;;;;;

오빠는 날 안아주며 우리 둘다 눈물을 흘렸던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애엄빠???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비록 우리는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진심어린 애정을 서로에게쏟고 있지만 정식으로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막연하게 내년 9월이나 10월즈음으로 생각중이었기에.....

모든 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ㅎㅎㅎㅎㅎㅎㅎ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새벽에 문 연 김밥집은 하나도 없었고, 고봉민 김밥이 오픈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첫 손님으로 참치김밥과 짬뽕밥을 시켜먹었다.

아침 아홉시에 진료를 시작하는 세인트마리 산부인과는 난임과 시험관 등으로 유명한 11명의 전문의가 있는 대형병원이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9시 6분쯤 도착했는데 이미 주차는 만차였고 근처에 있는 다른 건물에 주차를 했다.

대기실은 발딛을 틈 없이 산모들과 보호자들로 가득차 있었고, 저출산시대라는 미디어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기저기 배불뚝이 산모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번호표를 받고 1시간 40분을 기다려 내 담당 의사쌤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 네 무슨 일로 오셨죠?

나: 임테키가 두줄.....

의사: 하하하하 좋은 일이네요, 일단 초음파를 한번 봅시다.


초음파 결과 콩알만한 아기집이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임신 4주차라고 했다.

얼마 전 맞았던 생리 유도주사의 경우, 임산부에게는 자궁을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서 오히러 유산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맞아야하는 주사로 쓰이기도 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임산부가 맞았고 오빠는 하룻밤새 남친에서 예비아빠 신분으로 변해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를 정말 사랑했지만 그와 결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랑이라는 호르몬은 2년이면 바닥나기 마련인데 아이가 생기기 어려운 두 사람이 만나 (나: 다낭성, 곧 노산, 오빠: 나이 마흔, 아이 생각 없었음) 사회에서 말하는 딩크족같은 삶을 유지할 자신도 없었고,

오빠는 너무나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지만, 나는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랄까나....

내가 과연 정착할 수 있을까..? 한 남자의 여자로 또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삶을 과연 원하는 것일까?

자유분방하게 open relationship을 지향하는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it happened.

운명이 이런걸까.

임신의 가능성이 희박했던 우리는...

그렇게 예비엄빠가 되었다;

산부인과 검진 후 얼떨떨한 심정으로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고향음식 같은 쌀국수와 볶음밥을 먹었다.

다른 임산부들이라면 엄마의 미역국이나 소울푸드를 찾아나섰겠지만... 동남아에서 7년을 산 나에게는 라오스의 까오삐약이, 베트남의 pho가, 태국의 팟카파오가 소울푸드..

술먹던 날들이여 안녕.
김밥은 마시쪄
왜 생리통은 있는데 생리는 안하는거냐며 우는 나...
바르다 김선생은 점바점
오빠가 끓여준 계란탕
개꿀 ㅎㅎ

Happily ever after.

작가의 이전글 동남아살이 7년차, 국가별 비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