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작가 Aug 12. 2024

이야기 소재를 찾는 과정

소재가 아이디어로 발전하기까지

그림책의 스토리를 만들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소재 찾기다.


주변에서 그림책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무조건 그림책을 판타지 같은 동화 마을로 그려나가 소재를 저 멀리서 찾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지 않았다.

좋아하는 판타지 웹툰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나 혼자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지어낸 적이 있었다.

푸른 언덕 위에 멋진 성이 있고 용들이 날아다니며 적들과 싸우며 아름다운 세상을 되찾아 공주와 왕자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푸른 고래가 하늘을 헤엄쳐 아이들을 동심의 세계로 데려다준다는 아주 생뚱맞은 이야기였다. 앞뒤 개연성도 안 맞고 예쁜 그림에만 초점을 두어 이야기 책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냥 밥을 먹고 샤워를 하다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일 뿐이었다.


대학생 때는 학교 과제로 하루 만에 작은 그림책 더미북을 만든 적도 있었다.

"호구마와 갬자"라고 제목을 지었고 살짝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다. 호구마는 열심히 고구마를 캐는 청년이었고 이웃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 갬자를 찾아가 소원을 말한다. 멋진 호박집에서 생일파티를 열고 싶다고 하여 대왕 호박을 찾기 위해 호박이 묻은 새발자국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서 새 한 마리를 찾고 새에게 호박이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새가 산 너머에 있다 하여 둘은 산에 올라가 가시 넝쿨과 호박 요괴를 물리쳐 대왕호박을 찾아 힘겹게 배에 싣고 고요한 섬을 향해 가서 섬 위에 멋진 대왕호박 집을 놓는다. 대왕호박 집 안을 멋지게 꾸미고 구황 작물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를 즐겁게 한다. 생일 파티를 마치고 대왕호박 집에서 갬자와 함께 잠을 자며 호구마는 옆에 있는 갬자에게 고구마 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소박한 꿈을 말한다.


지금 다시 꺼내서 읽어보면 하루 만에 그린 그림이라 구상도 정말 단조롭고 내용도 어디서 본듯한 식상한 내용들이며 전개도 물 흐르듯이 흘러가 특별한 재미요소를 찾기 힘들다. 평소에 그림책을 많이 읽고 쓴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 소재와 주제, 스토리가 뻔하고 재미없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보다는 틈틈이 그때그때 이야기 소재를 찾아 주제에 맞게 스토리를 열심히 구상하고 휴대폰에 써 내려갔다.

소잿거리가 정말 별로여도, 스토리가 미완성이어도 괜찮으니 최대한 이야기 소재들을 주머니에 도토리를 주어 담듯이 적어두었다.




창작 그림책을 만들기에 앞서 이야기 소재를 찾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좋아하는 관심사에서 소재를 찾는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혹은 동물을 좋아하여 반려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며, 빵을 좋아하여 빵집에서 여러 빵들을 살피며 빵가게에서 벌어지는 소동에 관해서도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경험에 빗대어 찾거나 잘하는 분야에서 소재를 찾는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라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거나, 평소에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긴다면 서핑을 하는 호랑이라던지 과일 모양의 서핑보드를 판매하는 가게를 주제로 그림책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온전하지 않은 찰흙 덩어리를 물레에 돌리며 사용 목적에 맞게 다양한 모양의 컵이나 그릇으로 빚어내듯이 소잿거리들을 찾아서 한데 모았다면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독자들이 흥미롭게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는지, 어떤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인지 등 소재를 점차 다듬어 그림책의 주제를  만들어 나간다.


평소에 그림책 소재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면 바로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 둔다. 여러 소재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재는 선인장이었다. 작고 귀여운 다육식물들과 선인장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키우는 재미를 느꼈던 나는 선인장이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표현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면 선인장 캐릭터에게 어떤 이야기 옷을 입혔을까?

내가 정한 주제는 세 가지다.

1) 가시가 많은 파란 두더지와 선인장

2) 추운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 맞는 옷이 필요한 선인장

3) 선인장의 목도리를 도토리 친구들의 옷으로 만들기


 가지 중에서 이야기로 풀어나가기 좋은 주제로 2번이 채택되었다.

2번을 토대로 선인장이 추운 겨울에 온실 속에만 있어 답답해하자 몰래 온실 밖을 빠져나와 스웨터 옷이나 화분 옷을 찾아 입었다. 그러나 스웨터는 올이 나가거나 찢어지고 화분은 무거워서 입고 다니다 넘어져 깨지므로 선인장에 맞지 않는 옷들이다. 를 딱하게 본 온실 주인이 선인장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주기로 다짐한다. 선인장의 체형에 맞게 지푸라기로 옷을 직접 만들어 주어 선인장에게 선물을 하였고 선인장들은 이에 감동을 받는다. 추운 겨울에 선인장이 선물 받은 옷을 입고 나가 즐겁게 보냈다. 이렇게 소재의 아이디어를 찾아 주제를 정하고 내용으로 발전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1번과 3번의 주제는 왜 이야기로 발전되지 않았을까?

1번도 잘 풀어나가면 좋은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가시가 많은 파란 두더지가 두더지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어 선인장을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기승전결 이야기제대로 풀지 못했고 다른 이야기들과는 차별성이 보이지 않아서 메모장에만 남겨두고 꺼내지 않았다.


3번은 추운 겨울 목도리를 매고 몰래 온실을 탈출해 선인장이 사막으로 뛰어가는 도중 메고 있던 목도리가 점점 풀어져 길바닥에 놓인 털실들을 다시 떠서 작은 동물들에게 귀여운 뜨개 옷을 선물해 주는 내용이다.

선인장이 도망가면서 털실이 풀러 지며 옷을 만드는 과정을 잘 풀어나가면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그림책에서도 분명 이러한 비슷한 주제로 책을 만들었을 것 같아 결국 3번 주제도 반려했다.


선인장, 겨울, 옷을 소재로 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다듬어 나가 첫 창작 그림책 <크림별 선인장>을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이야기 소재와 주제를 정하여 스토리 라인을 구상하였으면 구체적인 내용을 적으면 16 면지 많으면 24 면지에 전한다.




선인장 이외에 다른 소재들도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열심히 그림책 이야기를 만들어 써 내려갔었다. 글을 다 쓴 다음 소리 내어 읽어보다가 정작 그림책의 내용이 와닿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이 안 맞거나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 이야기가 별로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린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만 찾다 보니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나가는 것을 간과해 버려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생일과 연관 지어 이야기를 만든다고 해보자. 생일파티를 즐겁게 하고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다로 끝나버리면 이야기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기 같아서 싱겁기만 하다.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일이나 케이크를 생각지도 못한 것과 연관 지어 사건을 풀어나가며 책장을 넘길수록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이들의 호기심을 점점 유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해야 하고 아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좋은 소재를 찾아 참신하고 기발한 주제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소재라는 첫 단추를 주제에 맞게 끼우면 이후로 많은 수정과 시행착오를 으면서 그림책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있을 거라고 본다.



소재를 찾았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과 그림 두 마리 토끼를 다잡아 멋진 그림책으로 탄생시킬 일만 남았다.

그동안 곰 캐릭터만 그려왔는데 첫 창작 그림책의 주인공이 선인장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