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여행 다니는 걸 겁내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부터 <내일로> 기차여행도 혼자 다녔고 (한 번은 남동생이랑) 해외여행은 늘 혼자였다. 혼자라서 좋았다. 고요했고 신경 쓸 것도 없었고. 물론 외로운 순간도 찾아온다. 그 순간이 언제냐. 바로 '밥 먹을 때'. 혼밥이 아무리 좋아도 혼자서는 여러 음식을 한 번에 시키는 데 무리가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혼밥이 익숙했는데 '홍콩'은 조금 달랐다. 딤섬은 혼자보단 둘이서 시켜 다양한 맛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홍콩 여행자들이 일행을 자주 구하던 카페에 들렸다. 오늘 몽콕 OO맛집에서 함께 식사하실 분!!! 어떤 여자분이 댓글을 달아주셨고 쪽지로 연락처를 교환해 우린 몽콕 역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OO입니다.
- 저 식당가기 전에 제가 캐리어가 고장이 나서 함께 사러가도 될까요?
- 아~ 그럼요. 여기 야시장이 싸잖아요
- 고마워요~ 근데 직업이 어떻게 돼요? 학생?
- (내가 좀 많이 동안 소리를 들었다. 한 때 SBS진실게임이란 프로그램에서 진짜 초등학생을 찾아라! 컨셉 때 섭외 요청이 왔을 정도. 당시엔 그랬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친구도 같이 섭외가 들어와서 그 친구가 먼저 미팅을 하고 왔는데. '멋쟁이 토마토'를 부를 수 있냐고 했다는 거 아니겠는가. 와. 난 곧장 작가님께 전화해 절대 못한다고 극구 사양했다. 내 친구는 방송 출연을 했고 멋쟁이 토마토를 불렀다. )
- 아. 저 방송국에서 일해요.
- 우와 진짜? 방송국에서 뭐하는데?
- (엥 왜 말이 짧아져) 저 작가요
- 대박. 나도 작가야. OOO 메인작가
-.............(와 일터에서 겨우 도망 나왔는데 여기에 선배님이 계시다니.... 이런 썅썅바. 심지어 연차가 나랑 같거나 나보다 모자랐고 나이는 나보다 많고 케이블에서 먼저 메인 입봉을 한 작가였다. 두 손을 빠르게 검색해 알아낸 정보였다.) 아 네.... 반가워요!!
- 와 여기서 이렇게 만나냐?
- 그러게요...
- 나 담배 한 대 피고 가도 되지? (이미 담배 입에 무셨음)
- 네...
- 자기 혼자 왔어?
- 네...
- 나는 진짜 갑자기 오게 돼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오늘 자기가 가이드해주면 되겠다
- 아 네... (난 여행이 철두철미한 스타일이다. 어딜 가서 뭘 먹고 뭘 보고 뭘 사야 할지 작가적 검색을 마치고서야 출발하기 때문. 한 번도 무계획적으로 여행을 나선 적이 없다.)
- 그럼 가방 좀 사러 가자.
- 네..
자고로 몽콕 야시장에선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서 무조건 처음엔 반! 디스카운트를 외치라고 블로그에서 보고 왔었다. 난생처음 본 메인작가님은 옆에서 물건 값 깎는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온 여행에서 지금 밥도 못 먹고 야시장에 갈 줄도 몰랐는데 대놓고 물건을 깎는 일까지 요청하다니. 이 언니 좀 많이 이상하다. 우린 직장에서 만난 것도 아닌데 난 메인이고 넌 그냥 작가야 이런 고압적인 태도가 사람을 꽤 불편하게 했다. 아니 많이.
- (키티 캐리어 고르며) 가격 좀 알려달라고 해봐
- (어버버 어버버) 아 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보는 여자와 쇼핑을 하고 주책맞게 큰소리로 가격을 반값으로 깎아내렸다. 가방만 산다던 그 언니는 구두에 운동화까지 득템 했다. 언닌 고르기만 했고 흥정은 내 몫이었다. 쇼핑 덕에 아슬아슬하게 딤섬집에 도착해 겨우 입에 딤섬을 욱여넣고 헤어지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짜 하늘도 무심하시지 숙소 방향이 같았다. (같은 숙소가 아닌 게 어딘가 싶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메인작가이자 언니는 한 마디 던졌다.
- 내일 뭐 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멘트였다. 내일 마카오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무서운 말이 나왔다.
- 같이 가자.
- 아. 그럼 내일 아침에 연락드릴게요.
난 쫓기든 숙소로 들어왔고 내일 아침 마카오로 빨리 갈 수 있는 페리를 검색해 첫차를 타고 마카오로 향했다. 내가 어떻게 시간과 돈을 들여온 여행인데 이대로 망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점심쯤 연락이 왔다. '어디야?' '아. 제가 밤에 잠이 안 와서... 마카오를 일찍 와버렸어요. 어떡하죠' '그래? 어쩔 수 없지. 언제 돌아와?' '아 잘 모르겠네요. 언니도 즐거운 여행 하세요' 그리고 난 마카오, 홍콩에서 그 언니를 피해 미친 듯이 도망 다녔다. 만나도 만나도. 여기서 선배를 만나다니.
가끔 카톡으로 그 언니의 근황을 보곤 한다. 어디선가 작가를 하고 계신 것 같다. 나도 작가를 하고 있다. 나의 도망력 때문인지 그 이후로 우린 어떤 방송국에서도 마주치지 않았다. 동행을 구하는 걸 쉽게 보지 말자. 당신의 상사가 기다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