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개 없는 사람이 되던 와중에도 녹화를 걱정하던 나란 사람.
30살이 되던 해. 서른 기념으로 건강검진을 했다. 의사 선생님이 복부에 젤을 바르고 기계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이상한 거 있는 거 아니겠지? '왜 이렇게 오래 보는 거야' 정말 오만가지 추측에 추측을 하던 중 검사가 끝났다. 그리고 간단히 검진 결과를 듣게 됐는데. 아니 글쎄. 내 몸에 돌이 있다지 않는 가? 돌이요? 그럼 수술을 해야 하나요? 제가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죠? 선생님은 아직은 추적관찰을 해볼 시기라고 말씀 주셨고 불안하면 전문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권유했다. 덧붙여 '혹시 배탈이 나거든 명치가 아니라 오른쪽 복부를 만져보세요. 그리고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가거든 꼭 담낭에 돌이 있다고 말하셔야 하고요' '네....' 난 그때 처음으로 '담낭'이란 녀석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너 거기 있었구나'
* 자고로 담낭이란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저장하는 주머니를 말하는데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때 주머니에 저장된 쓸개즙을 내뿜어 소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그런 녀석이긴 하다.
작가적 기질을 발휘해 담낭 전문병원을 찾았고 초음파를 무사히 했는데 선생님의 말이 아리송하다. '음. 2.7 cm네요?' 흠. 이 녀석 더 커진 건가? '그럼 수술을 해야 하나요?' '보통 3cm 기준으로 말씀드리긴 하는데. 환자분의 결정에 따라 수술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뭐 그런 단계?' 뭐야. 이 애매한 답변은. 일단 네 알겠습니다 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 중 간호사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친구는 소화기내과랑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데도 괜히 간호사를 하고 있단 것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 이거 수술해야 하는 거니?' '근데 난 수술 반대야. 너 거기 배 아파? 수술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너. 복강경이라고 해도 (난 복강경 이때 처음 알았다.) 수술은 수술이야. 일단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밀어봐.' 그때만 해도 기름진 걸 먹으면 배가 살살 아파오긴 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겁쟁이였던 나는 친구의 말을 의지 삼아 그렇게 수술을 미루기로 결심했다.
2년 마다하는 건강검진에서 담낭 안에 돌들은 더욱 존재감을 과시했다. '담낭에 돌이 있네요' '네네 알고 있습니다.' '꽤 큰데 전문병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네네~'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전 다 알고 있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새벽에 복통이 찾아들었다. 와 이것은 뭐야. 속에서 뜨거운 불이 나는 것만 같고 등 뒤에선 진짜 원펀치 투 펀치 아 몰라 그냥 엄청 아파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 우웩을 하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와. 그냥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난 안방에서 고이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를 깨웠다. '엄마. 나 배가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 엄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동생을 깨웠다. 근데 이 노므... 남동생.... 그냥 처잔다.... 누나가 이렇게 아파 죽을 것 같은데도 처자고 있다.... 엄마가 카톡 택시 좀 불러달라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파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넌 죽었어... 를 외치며 진짜 식은땀 뻘뻘 흘려가며 택시를 타고 동네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 담낭에 돌 있어요'... 4년 전 선생님이 말씀 주셨던 말을 써먹은 것이다. 덕분에 검사는 수월해졌고 수액을 맞았더니 와 살 것 같더라. 근데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내가 살 것 같은 그 순간이다. '환자분, 지금 부분 초음파로 돌의 위치를 확인했는데 돌이 너무 커요. 당장 수술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겨우 살아난 나는 네네. 일단 알겠습니다 하고 다시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님은 아니 이 새벽에 누가 아파서 응급실에 다녀오는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제 한숨 놓겠다는 심정으로 아니 딸이~ 몸에 돌이 있대요. 그래서 수술을 해야 한다지 뭐예요? 그리고 따라오는 택시기사님의 말... '아 근데 지금 나온 병원에선 수술하지 마세요... 잘 보는 의사도 있겠지만 여기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 진짜 많아요'와. 그렇다. 난 그렇게 또 수술을 미루기로 결심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후로는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아파도 이젠 수액으로 조절이 되는구나 싶었고. 수액을 맞으면 말끔히 나았으니까. 그리고 역병인 코로나19가 들이닥치는 걸 목격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코로나 끝나고 수술하는 거야. ' 그렇게 코로나가 종식되면 나도 수술을 하는 거야!라고.
그러던 중 누나가 아프던 새벽에 택시도 안 잡아준 남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알바 하나 할래?' '알바? 뭔데?' '왜 누나 연예뉴스 하면서 감독님들 영상 많이 만들었잖아. 그런 거야~' '아싸 그건 내 전문이지! 할래 할래!' 그리고 신나게 밤 10시에 사천짜파게티와 매운 갈비만두를 흡입 후 커피를 홀짝대며 자료를 찾는데.... 시그널 보내 시그널 보내.. 찌릿찌릿 찌릿찌릿!!!!!! 또 시그널이 찾아왔다. 그놈이다. 여기 돌 있어!!!!라고 외치는 그놈의 공격적인 시그널! 아씨. 왜 지금이냐고 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또 응급실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가스활명수로 재워보자 했는데 돌이 폭발 직전에 상태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먹어보자 하는 순간 온몸에서 적극적으로 약을 거부했다. 다 게워낸 것이다. 와. 이건 역대급인데? 등을 바늘 천 개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 잠을 자려고 해도 고통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누가 그러더라. 이 고통은 산통 수준과 맞먹는다고. 인스타에 찾아보니 실제로도 애 낳는 것보다 더 아팠어요 후기가 수두룩하다. 결국 나는 아침 8시에 문 여는 내과를 찾았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혹시 수액 맞을 수 있나요?' '저희가 코로나 때문에 지금 수액실을 닫아놨어요'와 이건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다. 그렇게 끙끙대며 겨우 수액 맞을 병원을 정했고 기어가듯이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수액 맞으면 낫겠지. 겨우 베드에 등을 대고 누웠는데 '우웩' 이건 무슨 또 무슨 시그널이야. 난 베드에 눕기는커녕 수액을 주렁주렁 단채 화장실에서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상하다. 보통 수액 맞으면 다 낫는데.. 여기 선생님 굉장히 정직하다고 하시던데 나한테 항생제 조금 놔준 거 아니야?' 1시간이 지난 후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때요?' '똑같아요.' '그럼 초음파 좀 봅시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힘없이 다시 베드에 누웠고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자마자 한 마디 하셨다. '큰 병원 가야겠어요. 당장 수술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진단서랑 영상 CD 해줄 테니까 당장 가세요' '그 정돈 가요..?' '어허. 당장 가시라니까..' 뭐야.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잖아. 미루고 미루던 수술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다니. 그 와중에도 난 메인작가님께 전화를 걸었다.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저 오늘 회사를 못 갈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어?' '아니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괜찮을 거예요' '그래그래. 잘 쉬다가 와'
급히 대형병원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가보는 곳. 그곳에서 난 환자 취급도 받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온 나와 달리 앰뷸런스에 실려온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내가 봐도 난 위중 환자가 아니었기에. 응급실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발 디딜 틈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 밤을 꼴딱 새우며 먹은 걸 다 토했고 속도 안 좋았기에 남은 의자라도 차지해야 했는데 빈자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휠체어에 탑승해 3급 병원이라고 말하는 응급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응급실이라고 바로 환자를 봐주질 못하는구나. 그래 급한 사람이 먼저지.. 1시간 기다림 끝에 새로운 수액을 달았는데 와 이것은 직빵이다.. 체증이 싹~ 내려앉는 기분이다. 와 집에 지하철 타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함께 동행해준 남편에게 '나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몸이 가벼워. 한결 나아.' '그럼 우리 진료만 받고 가자' '그래그래. 침대에서 쉬면 낫겠어'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검사를 여러 가지 해봤는데요. 담낭 안에 있던 돌이 튀어나간 것 같아요' '네? 돌이.. 돌이란 녀석이 나갈 수도 있나요?' '간혹 있거든요 간혹. 그래서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데 저희 병원에서 수술을 하시려면 1달을 기다리셔야 해요. 그래서 그나마 가장 빠르게 수술할 수 있는 병원으로 전원 (병원 옮기기)을 해드리려고요.' 집에 가서 잘 생각을 하던 나에게 전원이라니. 그렇게 난 사설 앰뷸런스에 실려 또다시 대형병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난 생각했다. 이 앰뷸런스는 얼마나 나오려나. 기본요금이 7만 원이던데. 그냥 택시 탔으면 만원이면 갔을 텐데. 아씨 돈 아까워. 이때만 해도 난 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