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lenben, Ausdruck und Verstehen
"정신적 세계의 연관은 주관에서 시작되며, 개개의 논리적인 과정들을 서로 연결하고 있는 정신적 세계의 의의연관(Bedeutungszusammenhang)에 대한 규정에까지 이르는 정신의 운동이다. 그래서 이 정신적 세계는 파악하는 주관의 산물인데, 한편으로 정신의 운동은 그 세계 안에 있는 객관적 지식의 획득을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주관에서 정신적 세계 구성이 어떻게 정신적 현실[혹은 실재]에 대한 앎을 가능하게 해 주는가'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앞서 이런 과제를 역사이성 비판의 과제라고 이름 붙였다. 이 과제는 오로지, 이런 연관을 만드는 데 협력하고 있는 개개의 기능들이 분리되어, 그런 기능들 각각이 정신적 세계에서의 역사적인 진행 경과의 구성과 관련해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의 체계론의 발견과 관련해 어떤 몫을 하는지가 드러날 때에만 해결할 수 있다. 그 [역사적인] 진행결과는 진리들의 상호의존성 속에 포함된 난점들이 어느 정도까지 해결도리 수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 진행 경과는 정신과학적 파악의 현실적 원칙을 경험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도출하게 될 것이다." -체험·표현·이해 p.17
"이해란 '너' 안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정신은 점점 높은 단계들의 연관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나' 안에서, '너' 안에서, 한 공동체의 모든 주관 안에서, 문화의 모든 체계 안에서, 종국적으로는 정신의 총체성과 보편사 안에서의 이 같은 정신의 자기성(Selbigkeit)은 정신과학에서 다양한 기능들의 협력을 가능하게 해 준다. 정신과학에서 앎[인식]의 주관은 그 대상과 하나이며, 이 대상은 모든 단계의 객관화 과정에서 통일성을 유지한다. 이런 절차를 통해 주관 안에서 빚어지는 정신적 세계의 객관성이 인식되고 나면, 그 절차가 과연 인식 일반의 의문제 제해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칸트는 인식 문제를 다루기 위해 형식논리학과 수학에 놓여 있는 기반들에서 출발했다. 칸트 시대의 형식논리학은 최후의 논리적 추상화, 사고 법칙 그리고 사고 형식들에서 모든 과학적 명제들의 타당성 입증을 위한 최종적인 논리적 근거를 보았다. 사고 법칙과 사고 형식들, 특히 범주들을 통해 이뤄지는 판단은 칸트에게 있어서 인식을 위한 조건들을 포함했다. 그는 이런 조건들을, 수학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들을 통해 확장시켰다. 그가 이룬 업적의 위대함은 수학과 자연과학적 지식에 대한 완벽한 분석에 있다. 하지만 칸트 자신은 제공하지 못했던 역사의 인식론이 그의 개념 틀 안에서 가능한지의 여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체험·표현·이해 p.18
"이해는 무엇보다 실천적인 삶의 관심 속에서 생겨난다. 각가의 사람들은 서로 소통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이해의 요소적인 형식들이 생겨난다. 이런 이해는, 서로 연결됨으로써 좀 더 고차적인 형식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철자와도 같다. 내가 말하는 이해의 요소적인 형식이란 개개의 삶의 표현에 대한 통일적인 해석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그런 해석은 유비추론으로 서술될 수 있다. 이런 추론은 그런 해석과 그것에 표현된 것 간의 규칙적인 관계를 통해 매개된다. 나아가 그런 해석의 개별적인 삶의 표현은 모든 종류의 이해에서 가능하다. 하나의 문장을 형성하는 단어로 나아가게 되는 일련의 철자들은 하나의 진술에 대한 표현이다. 어떤 표정이나 안색은 우리에게 기쁨이나 고통을 보여준다. 추후에 좀 더 복잡한 행동을 구성하게 되는 요소적인 행동, 예를 들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망치로 내려치거나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등의 행동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런 요소적인 이해에는 전체적인 삶의 연관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삶의 연관은 삶의 표현들의 지속적인 주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생겨난 하나의 추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요소적인 이해의 과정이 바탕을 두고 있는 근본 관계는, 표현이 그 안에 표현된 것과 맺고 있는 근본 관계이다. 요소적인 이해는 원인에 대한 결과의 추론이 아니다. 또 우리는 더욱 조심스러운 입장에서 그것을, 주어진 결과에서 일정한 삶의 연관으로 소급해 올라가는 절차로 파악해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 후자의 관계가 사태 자체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이행은 말하자면 문 앞에 있는 것이지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체험·표현·이해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