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두 번째 에세이.
글로 상을 받았다.
얼마 전 지리산을 주제로 에세이를 써서 공모전에 냈고, 오늘이 바로 그 심사결과 발표 날.
사실 조금은 기대를 했다.
공들이기도 많이 공들였고 독창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일에 집중하다가 발표난지가 한참 지나서야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어……?
내 이름이 없다.
그런데 남편 이름이 있다?
하나는 내 이름으로, 또 남편을 주제로 쓴 글은
남편 이름으로 제출했는데
그 글이 당선된 것.
그것도 무려 최우수상이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전체 대상은 사진부문이 받았으니
에세이 부문 대상이나 마찬가지인 셈!
남편에게 제일 먼저 카톡으로 소식 전하고,
뒤늦게 폰에 와있던 문자 한 통을 보았다.
‘김아라님, 축하드려요! 참가상 경품에 당첨되었습니다' 라는.
으응????? 축하라니?
다시 한번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아까는 보지 못한 내 이름과 휴대폰 번호 뒷자리가 참가상 부문에 적혀있었다.
세상에 마상에!
이건 생각도 못한 전개. 사실 글 하나는
수정하다가 날려 먹지 않나,
제출하는데 업로드 용량 초과하지 않나
그래서 그냥 내는데만 의의를 두자
하고선 휘뚜루마뚜루 냈기에 기대를 못했다.
그런데 수상을 했다. 내가 쓴 에세이 두 개 다.
이번 주 일이 많아서 일요일 저녁만 함양에 있다가
오늘 아침 7시 차로 곧장 대구에 온터라,
대구와서는 일로 치이며 보낸 하루라 지쳐있었는데
큰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그럼 반야봉상 수상한 글은 아래에 첨부해야지.
내가 사랑하는 그. 그가 사랑하는 지리산.
내가 사랑하는 그는 지리산을 사랑한다. 그가 산을 좋아하게 된 건 아버지 영향이 크다. 지금은 환갑을 바라 보고 계신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산을 수시로 오르셨다. 그리고 자연스레 두 아들을 데리고도 함께 했다. 특히 큰 아들의 살을 빼주기 위해서. 통통했던 그가 아빠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오르곤 했던 산. 2~30년이 지난 지금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이제는 산을 좋아서 자발적으로 오르는 그이다.
1주 1산 타는 걸 목표로 하고, 블랙야크 100대 명산도 참여하고 있고, 또 몇년 전부터는 자연주의 등산 크루 '쓰담쓰담(쓰레기를 담다 산을 쓰다듬다)'을 결성하여 플로깅을 하며 오르는 등산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다. 혼자 하던 일이 그의 여자친구이던 나와 함께 둘이 되고, 또 둘이서 하던 일이 뜻맞는 지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이제는 서울, 수원, 부산, 대구, 함양 전국 각지의 약 열명 가량의 정규 크루로 자리잡았다.
자칭타칭 클린산행지기, 우리가 그를 부르는 호칭은 '산대장'.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반한 이유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라서였다. 약 10년이 채 안되게 지켜본 바로 그는 생각한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다. 산을 자주 오르기에 몸이 건강하고, 산에서 받은 좋은 정기로 긍정적이고 마음까지 건강한 사람. 그래서 그가 한다고 하는 일이면 반대 없이 적극 지지를 하고 응원한다.
다시 돌아가서 그가 하는 쓰담쓰담 활동을 좀더 얘기하자면, 그의 차 트렁크 바닥엔 항상 집게가 들어있다. 바로 쓰레기 줍는 용도. 물론 힘들고 고된 산행일 경우엔 어쩔 수 없지만 여건이 될 때는 항상 배낭가방에 클린백을 메달고 쓰줍 집게를 챙겨 산으로 간다. 오르는 길에 보이는 수많은 쓰레기들,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을 쫓아 주워 담는다. 때론 클린백이 차서 넘칠 정도로 나오는 양. 주로 명산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그러하다. 요즘 같은 가을 단풍 시즌에, 대형 관광버스로 오는 단체 산악회 분들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먹은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기도 한다. 반면에 가끔은 주울 쓰레기 없이 깨끗한 산도 발견한다. 이곳에 방문한 등산객들이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이라는 반증, 혹은 앞서서 다른 누군가가 이미 주워 담았을 수도 있다.
쓰레기를 줍다보면 장단점이 극명하다. 장갑을 끼고 집게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냄새가 나거나 오염이 심한 쓰레기는 담으면서도 괴롭다. (이따끔 큰 볼일을 보고 난 휴지를 줍게 될 때는 이걸 주워야해 말아야해? 고민되기도 한다.) 그걸 고스란히 집까지 가져가는 과정은 더더욱. 그리고 자꾸만 멈춰서서 담느라 페이스가 깨질 수도 있어 어려운 난이도의 산행지에서는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장점은 자동으로 운동효과가 배가 된다. 물론 등산 자체로도 운동이 많이 되지만 특히 숙이고 다리를 구부려 주워담는 과정에서 스쿼트 운동이 되서 하체가 더욱 튼튼해진다. 또다른 좋은 점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다는 것. “젊은 사람들이 멋진 일 하네.” 라며 엄지를 척 치켜주시는 어른들도 계시다. 우릴 보고 단 한사람이라도 '아, 나도 한번 플로깅을 해볼까.'라든지, '산에서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의 전환만 가지게 되도 무척 뿌듯하고 보람차다.
그런 그가 특히 사랑하는 곳은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건 무려 5번이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함께도. 뿐만 아니라 높은 곳 뿐만이 아니라 20km가 넘는, 오래 걷는 트레킹도 좋아하는 그는 지리산 둘레길 22코스를 모두 걸었다. 그가 둘레길을 걷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름휴가라고,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어린이날이라고, 그냥 특별한 일 아니라도 수시로. 한 번은 일박이일동안 1~2~3코스 총 45km 이상을 혼자 걸은 적도 있다.
하이킹하이(hiking high ; 걷는 자의 황홀)를 추구하는 그. 한두 시간의 짧은 산행은 성에 차지 않는단다. 십오 킬로가 넘는, 하루 일과를 꽉 채워야 끝나는 장거리 산행이나 둘레길 트레킹에서 묘한 황홀감이 느껴진다고. 이미 이십 킬로 넘게 걸었지만 더 걸어도 전혀 지치지 않을 껏만 같은, 끝없이 걷고 싶은 상태에 이른다. 이때 올라오는 무아지경. 걸을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행복감이 ‘하이킹하이’라 한다. 그런 그에게 종주도 할 수 있을 뿐더러 둘레길도 어디든 골라서 걸을 수 있는 지리산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누가 보면 지리산을 짝사랑 하는 줄 알겠다만, 정말 그렇다. 산이란 산은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지리산을 가장 사랑한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약 64%가 산으로 덮힌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산의 개수는 (해발 200m 이상의 산만) 무려 4,440개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많고 많은 산 중에서도 왜 하필 지리산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그의 고향인 함양에 있는 민족의 영산이기도 한 지리산. 한강 이남 내륙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산. 그에게 대체 지리산이 왜 좋으냐고 물으니 그냥이란다.
지리산에는 봉우리도 있지만 아름다운 계곡도 많이 흐른다. 또 천왕봉처럼 누구나 쉬이 오르지 못하는 높고 험준한 봉우리도 있고 노고단처럼 접근성이 좋은 곳도 꽤 있다. 나도 그도 어린 시절 가족들과 노고단에 나들이 왔던 공통의 추억이 있다. 지리산 속 수많은 계곡 역시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다. 어떻게 보면 지리산은 그 자체가 추억의 매개체이다. 그와 나 우리에게도 그러하듯.
그에게 쓰담쓰담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우선 키우는 진도견 우주를 잘 훈련시켜 플로깅을 하는 개로 만들 것이라고. (이미 산책길에 보이는 캔이나 페트를 줍는 건 잘한다. 물고는 도통 주질 않아서 그렇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내년에 태어날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조기교육을 시켜 아들 역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할거라고 한다. 아내인 내가 운영하려고 하는 에어비앤비에서도 ‘지리산을 여행하는 하이커들을 위한 쉼터’ 프로그램을 기획해 희망하는 투숙객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에어비앤비 플로깅을 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경상남도의 가장 끝 서북단,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소백산맥의 최고봉인 지리산을 사랑하는 그. 내가 사랑하는 그는 지리산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가 사랑하는 지리산을 더불어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