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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Dec 10. 2021

내 뱃속엔 고래 한 마리가 산다.

태동에 대해서.



처음엔 뽀글뽀글,

약하게 물방울 터지는 느낌이었다.

16주 차에 처음 태동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고

17 차엔 발차기하는 것도 느껴봤다.

그때 쓴 일기 중에


8/5 17w3d
잠이 너무 쏟아져서 누워서 쉬는데
pm3:47 가만히 배에 손을 얹었다가 불룩,
차밍이가 발차기를 한 게 분명하다.
그동안 꼬륵꼬륵 느낌만 받다가
이렇게 툭 튀어나오는 확실한 태동은 처음.....


부르면 대답하듯 쏙,



그즈음 갔던 병원 정기검진에서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께서 문득,

"앞으로 태동 어마어마하겠어요.
애가 많이 설치네."


하셨을 땐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쪼끄만 게 움직임 심해봤자 얼마나 심하겠어?

했는데 남들보다 일찍 느낀 태동은 점점 심해져갔다

처음에 물방울같던 느낌은

곧 미꾸라지가 지나가듯 했고,

조금 더 지나자 잉어 한마리로 바껴 있었고,

또 요즘 2킬로가 훌쩍 넘은 차밍이의 존재감이

고래(돌고래 말고 범고래)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 크게 느껴진다.



딸꾹질도 종종 한다.


유유히 유영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묵직하게 뱃속을 휩쓸고 지나가기도 하고,

또 때론 꿀렁꿀렁 심하게 요동을 치는데

대체 안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지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28주 무렵부터는

가만히 있다가 앜! 걸어가다가도 읔!

발로 과격하는 순간들이 종종 오는데

아파서 악 소리가 절로 난다.

다리가 오른쪽 옆구리에 있는지 늘 그 부분에서만

유난히 아프게 찌른다. 손을 대고 심한 태동을 같이

느낀 남편이 한 번씩 나무란다.

"차밍아, 너 축구선수될 거야?
엄마 힘들게 하지 마 가만히 좀 있어."


얼마 전 진료에서부터 주수에 비해 다리만

2~3주 많이 길다는 말을 듣고난 이후로

배안은 좁고 다리는 길어서 그렇구나

이해하려 한다.

태동이 장난 아니라는 걸 들으신 시어머니는

그게 다 남편과 나를 닮은 거라고 하신다.

가만히 있지를 않고 그렇게 다니는 걸 좋아하니

딱 그런 우릴 닮아서 차밍이도 활발한 게 틀림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원래 태동이 이렇게 심한 거 맞느냐고 반문했다



매일 밤 10~11시가 가장 피크 타임이다.

물론 내가 씻고 누워서 편안하게

클래식음악 듣는다던지 나름의 태담을 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그분이 오신다.

춤신춤왕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탭댄서인 마냥 느껴질 때가 많다.


요즘 새벽마다 잠에서 깨는 요인들은

꿈+화장실+코막힘+태동 이렇게 4가지.

호르몬 영향으로 다이나믹 요란한 꿈을 워낙에 많이 꾸고, 작은 신호가 와서 화장실 가고 싶을 때가 많다. 방광이 눌려져서 그런 거라는데 화장실 안 가고 참으면 배가 싸아싸아 한 느낌. 그리고 임신으로 심해진 비염 탓에 코가 막혀 깨기도 하고, 태동에 놀라 깰 때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이런 느낌도 머지않아 그리운 순간들이 오겠지.

태어나고 나면 태동이 어땠었나

가물가물하기도 할 거다 분명.

그래서 지금의 이 느낌을 잘 느끼고

기록해두려고 한다.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또다시 시작된 춤신춤왕


그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내 뱃속엔 고래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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