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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Jul 09. 2024

'문동집'이 건넨 선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곳에 가는 걸 이렇게 말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애들은 다 까먹을텐데 왜 좋은 곳에 데리고 가냐. 그런데 거기에 대한 제일 좋은 답은 좋은 감정은 남는다는거죠. 부모와 함께 바다를 갔고, 바다에 대한 좋은 감정은 남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해수욕장인지, 뭘 먹었는지 잊어버려도 나중에 바다에 가면 굉장히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 듯이 좋은 책과 술을 마시면 내용은 잊어버려도 좋은 감정은 남을 수 있다. 어차피 다 잊어버려요. 책이라는 건 읽고 나면 70%이상은 다 잊어버린대요. 그래도 그 책을 기분 좋게 봤다는 느낌만 남는 거죠.
                                                                                    - ‘알쓸인잡2’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


내가 바다를 유독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해준 건 김영하 작가의 말이었다. 바닷가에서 가족과 추억을 만들던 순간이 참 좋았다. 좋은 감정은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부터 시작된 걸 수도 있겠다. (바다에 관한 추억 이야기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바다를 향한 애정이 깊다)


바다만의 특별한 매력때문에 좋아하는 것도 있다. 바다는 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날씨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도 하고, 파도의 세기와 모양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사장의 빛이나 색에 따라 다르고, 주변에 무엇이 있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건물 하나 없이 바다밖에 안 보이는 모습,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빛, 바다와 하늘 사이의 평행선, 때론 같고 다른 색을 띄는 바다와 하늘 등 바다풍경을 한 눈에 담으면 속이 뻥 뚫리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때론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 매력 때문이 아니라 좋은 감정이 남아있는 장소이기에 그토록 좋아했던 거다. 그래서 어느 바닷가에 가도 편안함, 평화로움, 포근함, 따스함,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아무리 많이 가도 질리지 않는 곳이며, 심지어 익숙한 바닷가에 가도 새롭게 느껴졌다.


‘문동집’에서 바다를 봤을 때도 새로웠다. 아니, 평소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주변경관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유독 색이 달라서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자리에서 온전히 그리고 오랫동안 (주변의 것들과) 함께한 여유’가 ‘문동집’의 바다뷰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는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져서 보이는데 사진에 다 안 담겨서 속상하다. 


'문동집'에서 본 바다는 별채에서 본 것이었다. 작은 창을 통해 내 시야에 들어온 건, 기장의 마을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바다와 하늘, 삼각형 모양의 지붕이 있는 집들,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무.... ‘문동집’에서 본 바다는 자연과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이었다. 비오는 날이라 하늘이 흐리지만, 맑고 쾌청한 날이었다면 장관이었을 것 같다.


바다처럼 ‘문동집’도 화려한 포장(조건, 인테리어)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나는 곳이었다. 바다와 문동집 뿐만 아니라 기장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도, 바다도, 하늘도, 나무도... 모두 언제나 그랬듯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그 자체가 예술작품으로 느껴졌다.


‘문동집’은 ‘스테이폴리오’에 따르면, 1937년에 지어진 한옥이며 호스트가 자신만의 취향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자신만의 취향으로 변신시켰다고 했지만, 37년에 지어진 오래된 한옥만의 매력을 유지한 채 본인의 취향을 입힌 듯 보였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집은 묘한 매력이 있다. 여기에 호스트의 취향 그리고 현대적인 멋까지 입혀지니 포장지가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났다.


안내받은 주소와 가까워지면서 문동집의 지붕이 보였다. 지붕하나에 설렘지수가 급격히 올라갔다.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여 숙소 앞에 도착하니, 눈앞에는 고즈넉하면서도 세련된 한옥이 펼쳐졌다. 특히 흰색과 우드의 조화, 정갈하게 배치된 큰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문동집이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게 예뻐 보였을 정도로 첫 눈에 반해버렸다.



안채와 별채, 아담한 마당, 하얀 담과 나무로 된 대문, 나란히 배치된 큰 창문까지 한 눈에 들어왔는데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날씨가 좋아 푸른 하늘이었더라면, 수채화였을 것 같다. 비록 비가 와서 수채화 같은 광경은 못 봤지만, 정갈하고 무채색의 문동집은 흐린 하늘과도 잘 어울려서 그것대로 좋았다. 꼭 수목화를 보는 것 같았다.

     

문동집은 1인 숙소가 아니지만 혼자 고요하게 머물러도 좋을 것 같았다. 단지 나처럼 보안을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혼자 보다는 편안한 사람과 함께 머물러보는 걸 추천한다. 잠금장치가 잘 되어있긴 해도 아무래도 밖에서 집이 훤히 보이고, 대문이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마당이 펼쳐졌다. 그리고 안채와 별채가 ㄱ 자로 위치해 있었다. 마당에는 안채로 가는 동선대로 돌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그 돌다리를 보면서 징검다리 놀이를 했던 어린 내가 잠깐 떠올랐다. 


미닫이문을 여니 안채의 내부가 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웰컴 티와 양갱 그리고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놓여있는 두 개의 방석이었다. 주인의 따스한 마음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귀에는 주인이 준비한 웰컴뮤직이 들려왔고, 숲 속 향기가 코에 부드럽게 들어왔다.  


시각, 청각, 후각으로 '문동집' 주인의 마음을 느끼면서 안으로 들어서니 환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첫눈에 반한 숙소에 더해서 첫 느낌까지 좋은 곳이었다. 


안채 내부는 거실을 중심으로 양 쪽에는 침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곳곳에서 주인의 취향과 감각, 고객과 장소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평소 LP와 턴테이블에 로망과 환상이 있었던 터라 그것들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워서 어쩔줄을 몰랐다. 덜렁대는 성격이라 혹시나 망가뜨릴까봐 조심스러워서 손도 못 댄 채, 남자친구에게 얼른 써보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남자친구도 LP만의 음색을 좋아하는 터라 서둘러 LP 하나를 골라 턴테이블에 재생시켜봤다. 한국 고유의 멋과 정갈하고 차분한 문동집의 분위기와 팝 음악이 묘하게 어울렸다. LP는 음악감상실이나 카페가 아닌 걸 감안하면 꽤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러움이 가시고 난 뒤에야 비치된 LP들을 모두 다 재생시켜봤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문동집과 잘 어울렸다. 마음에 쏙 드는 앨범까지 발견해서 그 LP를 사진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턴테이블 옆에는 솔방울이 담긴 나무 모양의 오브제가 있었다. 꼭 일부러 나무모양의 오브제에 솔방울을 담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내 예감이 맞을거라고 의미부여하며 오브제를 한 참동안 바라봤다.



화장실은 세면대, 변기, 욕조가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욕조 밖에 샤워기가 따로 있어서 샤워를 하고 욕조에 들어가 반신욕을 하기에 편리했다.


어메니티도 기억에 남는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로 구성된 어메니티바는 '문동집'이라고 적힌 종이박스에 정갈히 담겨 있었는데, 인원 수에 맞게 2박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비누형태로 되어 있는 건 손 씻을 때만 사용해보고, 다른 기능이 잘 될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 사람으로서 반신반의로 사용해봤다. 생각외로 좋았다. 센스있게 준비해주신 거품망을 이용하니 거품도 잘 나고 세정도 잘 됐다. 무엇보다 향이 좋았는데, 문동집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사용감과 향이 너무 좋아서 한 박스로 아껴쓰고 남은 한 박스는 고이고이 가져왔다. 그만큼 거품이 풍성히 만들어져서 한 박스만으로도 2명이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세면대 옆에 비치되어 있었던 칫솔꽂이에서는 주인의 세심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매우 작은 것까지 신경 쓰시는 분 같았다. 기분이 더, 좋아졌다.


어메니티바도 특별했지만, 이보다 더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이었다. 원형의 우드 거울을 볼 때마다 흰색 바탕의 서까래가 비쳤다. 문동집의 욕실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침실은 수면에 집중하기 좋은 구조였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였고, 침대 옆에는 스탠드와 몇 권의 책, 드라이플라워(?)로 보이는 꽃과 우드화병, 에어컨 그리고 밖에서 보았던 창문이 있었다. 


화장실문과 침실문은 옛느낌이 나는 유리와 우드 조합의 미닫이문이었다. 투명한 유리는 아니었지만, 실루엣이 보여서 가족과 함께 오면 민망할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하면 좋겠다.


침대에 누우면 서까래 천장이 보이는 게 매우 좋았다. 흰색 바탕에 짙은 갈색의 서까래는 스케치를 연상시키기도 했고, 조슈아 비데스 작가가 디자인 한 '매트블랙커피' 카페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눈이 매우 안 좋아서 자기 직전에는 흐릿하게 봐야했지만, 시력이 마이너스 아닌 사람들은 자기 전 고즈넉한 멋과 현대의 멋이 조화를 이룬 천장을 보다가 잠들면 좋을 것 같다.



준비해주신 슬리퍼를 신고 옆에 있는 별채로 들어서니 주방과 다이닝공간이 펼쳐졌다. 싱크대 상판에는 물건이 거의 없었고, 꼭 필요한 것들만 놓여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상부장이 없는 인테리어였다. 부족한 수납은 한쪽에 마련된 수납장으로 해결한 듯 보였다. 하부장과 수납장에는 전자레인지나 커피포트, 분리수거통, 와인잔, 찻잔, 식기 등이 있었다. 


수납장 위에는 홈카페용품이 마련되어 있었다. 커피머신, 캡슐커피, 커피드리퍼, 글라스서버, 원두그라인더, 원두, 커피잔, 커피포트까지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침에 캡슐커피와 핸드드립커피 두 종류 모두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홈카페용품 옆에는 문동집과 잘 어울리는 바다 액자가 있었고,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었다. 액자 하나, 블루수트 스피커 하나도 허투루 고르지 않은 듯 보였다. 모두 문동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다이닝룸에는 4인용 원형 테이블과 네 개의 의자가 있었다. 짙은 색의 우드였는데, 색감과 질감이 문동집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서까래 색과 맞춘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평소와 달리 짙은 색의 우드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침실에서 본 것과 비슷한 질감의 우드화병이 있었고, 화병에는 작은 꽃이 있었다. 그 옆에는 천으로 덮인 바구니가 있었다. 천을 들어보니 빔프로젝트용품이 있었다. 우리는 1박인데다 대화하다보니 시간이 훅 가서 사용하지 못했지만, 다음에 또 묵게 된다면, 2박을 묵으며 빔프로젝터를 이용하고 싶다. 


안채에 있었던 큰 창문이 다이닝룸에도 있었다. 큰 창문 외에 작은 창문도 있었는데,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보였다. 더구나 평소 큰 창문으로 밖을 보다가 작은 창문으로 보니 몰래 바깥구경을 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그 창문을 통해 앞에 적었던 그 특별한 바다뷰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과 조화롭게 자리한 바다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다이닝룸에 있었던 순간이 가장 좋았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고, 하나하나 찬찬히 눈에 담는 여유를 느끼게 해줬다. 


평소 우리는 서로 경청하고, 표현하며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진정한 대화를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곳에서는 평소보다 더, 소통이 잘 됐다. 덕분에 우리는 특별한 곳에서 진솔하고 깊은 대화의 시간을 보내며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


소박하게 내놓은 안주 그리고 그의 정성, 핑크빛의 와인은 화려하지 않지만 문동집만의 색이 더해져 그 자체만으로 특별해보였고, 빛났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다이닝룸에서 커피 한 잔과 전날 먹지 못한 양갱을 먹었다. 우리와 문동집이 만든 조식이나 다름없었다.


여유로운 조식시간을 보낸 후, 다시 안채로 넘어가 거실에서 방명록을 남기고 미련가득한 체크아웃을 했다.


그곳에서 느꼈던 느낌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위에서 적은대로 포장지가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곳인 '문동집'.

그곳만의 매력은 우리에게 영향력이 되었다. 

덕분에 온전히 주변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온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문동집'이 내게 준 선물은 '온전함'이었다.


그때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건 소중한 일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못할 순간이기에 그때 그 순간에 온전히 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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