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ul Apr 28. 2024

'담대하게 커피워크'가 건넨 선물.

여정에 이어, 뜻밖의 선물.

영업마감했을 때 찍은 담대하게 커피워크. 금요일 체크인 할때 보니 아담한 가게에 사람이 많았다.



여정에 체크인하면서 받은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좀 일찍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체크아웃 준비까지 다 마친 후 1층으로 내려갔다. 전날인 체크인 한 날 바로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지만, 저녁에 체크인해서 마시지 못했다. 11시에 오픈하여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매주 화요일에 쉰다고 한다.


체크인 할때 보니, 그 작은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있었다. 주루룩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귀여워보였다. 골목에 위치한데다, 매장이 협소한데 사람이 많이 찾아온 걸 보니 커피를 꽤 잘 내리는 듯 했다. 그래서 내려가는 발걸음에 기대와 설렘이 가득 내포되어 있었다. 


오픈시간에 맞춰서 가서 손님이 하나도 없을 때, 얼른 사진 남기기!


기념으로 쿠폰도 사용해보고 싶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커피의 맛이 궁금했던 마음이 더 컸다. 사람이 많이 몰리기 전에 방문하고 싶어서 오픈 시간에 맞춰 갔다. 이제 막 문을 연 듯 밖에 나와 계신 사장님과 딱 마주쳤다. 덕분에 사장님과 함께 카페로 들어서는 진귀하고 재밌는 경험까지 했다. 


핸드드립 전문 카페이니 당연히 핸드드립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내게 평소 핸드드립을 자주 마시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내가 내려마시진 못해서 자주는 못 마시지만, 핸드드립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내가 직접 내려 마시기엔 아직 나의 성미가 급하다는 말은 TMI이므로 생략했다.)


나는 평소 향과 맛이 진하고, 바디감이 묵직하며 산미 있는 것보다는 고소한 커피를 좋아한다. 나의 커피취향을 사장님께 말씀 드리니 저희 커피는 원두를 가볍게 볶아서 대체적으로 산미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뭐, 그래도 괜찮았다. 산미 있는 커피에 대한 편견은 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또 그거대로 잘 마시는 편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며 최대한 산미가 적은 걸로 부탁드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카페의 메뉴판. 한 장만 찍었는데, 몇 장 더 있다. 커피필터 뭉치와 손글씨가 앙증맞고 귀여웠다.


사장님은 위의 사진에 있는 '과테말라 엘 인헤르토 게이샤 풀리 워시드' 원두를 추천해주셨다.

위의 사진에는 하나의 커피필터만 있는데, 여러 장의 커피필터 뭉치를 내게 주셨었다. 그게, 이 카페의 메뉴판이었다. 작은 커피필터에 꾹꾹 정성들여 쓴 손글씨와 예쁘게 정리해놓은 커피필터 뭉치가 앙증맞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다른 카페보다 설명이 더 자세했다. 특히 식을수록 향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적혀있는 부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렴풋이 느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식을수록 달라지는 커피의 향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문구를 보고, 또 봤다.


추천을 받아 고른 원두를 그 자리에서 바로 갈고 내게 향을 체험해보게 해주셨다. 가볍게 볶았는데도 바로 갈아서인지 향이 진했다. 그리고 좋았다. 어떤 커피가 나올지 예상되기도 해서 커피가 내려질 동안 기대되고, 설렜다. 


사장님은 커피에 대해 친절하고, 세심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향을 맡아본 후, 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식을수록 달라지는 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보니 커피 원데이클래스 들었을 때처럼 커피에 대해 하나 더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잠시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카페 사장님은 여정의 호스트인 임태병 건축가님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에 동의와 공감을 하며 나도 잠깐동안 느낀 호스트에게서 느꼈던 좋은 점들에 대해 말했다. 잠시동안 나눈 대화였지만, 그 대화안에는 따스함과 사람간의 정이 가득했다. 



나는 여정에서 액자같은 창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테이크아웃했다. 다음에는 매장에서 마시고 싶었다. 머그잔에 담으면 커피의 향과 맛이 더욱 선명해지므로 꼭 매장에서 다시 한번 마시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커피가 나에게 매우매우매우매우 잘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면 주는대로 잘 마시고, 즐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커피 취향이 확실하다. 그런데 또, 막상 산미가 너무 강한 커피를 만나면 좀 실망하는 편이다. 내가 산미가 가장 적은 원두로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마신 커피가 취향저격이었다.


그렇다고 산미가 느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볍게 원두를 볶아서인지 바디감도 가벼웠다. 내 최애 커피 취향과 정반대였는데도 취향저격이었다. 마시고 나서 끝에 텁텁함이 남지 않았고, 매우 깔끔했다. 


산미가 분명히 느껴졌다. 가벼움도 느껴졌다. 코와 혀 그리고 입안 가득 이 집만의 커피맛과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오? 오! 오~'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산미있는 커피의 매력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상쾌함때문에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산뜻하고 가벼운 커피였는데 커피의 향과 맛이 매우매우매우 깊었다. 진하고 무거운 커피가 아니더라도 이토록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산미 있는 커피에 대한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입안에 머금으며 그 맛과 향을 더 느껴보려고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하고 놀라고 감탄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참 코믹하다. 


이 집만의 그리고 이 원두만이 갖고 있는 색이 뚜렷하게 드러난 커피이기도 했다. 식을수록 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장님은 커피를 건네주며 천천히 마시세요~ 라는 말로 작별인삿말을 대신하셨는데, 그 인삿말과 커피필터에 적힌 설명을 떠올리며 식을 때 까지 기다리며 아주 천천히 마셔봤다. 


정말 식을수록 향이 달라졌다. 식을수록 더 깊어지고, 그 커피만의 색이 더 뚜렷해졌다. 하나의 커피에서 다양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취향저격 제대로 당한 커피 덕분에, 나는 아주 향긋하게 여정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들뜬 기분으로 체크아웃을 했다.



담대하게 커피워크에서 마셨던 그 커피의 여운은 매우 길게 갔다. 계속 생각이 났다. 며칠 후 다른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는데, 좀 실망했던 터라 이 카페의 커피가 더욱 그리웠다. 


다음에는 다른 커피도 마셔보고 싶다. 만약 이 카페가 집 근처에 있었다면 나는 산미있는 커피 도장깨기를 며칠동안 주구장창 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아무리 호불호가 있어도, 취향이 있어도, 

맛을 느끼는데 있어 도전하는 건 좋은 경험이다. 맛으로도 시야가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담대하게 커피워크는 나의 매거진의 주제에서는 벗어나있다. 

장소가 아닌, 커피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매거진에 이 글을 넣은 이유는, 여정의 기운 이 카페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였지만, 그 카페 안에 있는 동안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낯선 곳인데도 매우 편안했다. 그래서 낯가리는 나인데도 사장님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마 여정이 갖고 있는 따스함과 포근함과 사장님의 커피와 카페를 찾은 손님을 향한 순수하고 선한 진심이 만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하여 '담대하게 커피워크'가 나에게 준 선물은 '순수하고, 선한 진심'이다. 

커피와 손님을 향한 '순수하고, 선한 진심'이 있기에 이래도 저래도 좋지만, 커피취향은 확실한 한 손님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마음의 결과가 커피에 온전히 담긴게 아닐까. 









(사실, 이 주제와 벗어나지만 이 선물도 적고 싶었다. '커피와 나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 라는 선물도 받았다.)

이전 03화 '스카이베이 경포'가 건넨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