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집을 내려놓고 마주하는 진짜 인생
우리는 매일 '앞'을 향해 걷는다. 신현정 시인은 그의 시 〈희망〉에서 달팽이의 걸음을 통해 우리 삶의 단면을 비춘다.
"앞이 있고 그 앞에 또 앞이라 하는 것 앞에 또 앞이 있다"는 시구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는 끝없는 연쇄다. 그 길 위에서 달팽이는 제 몸보다 무거운 집을 지고 전속력으로 기어간다. 인간의 눈에는 느릿한 발걸음일지 모르나, 달팽이에게는 생을 건 최선이다. 시인은 여기서 파격적인 상상을 더한다. 어느 날 그 달팽이가 느닷없이, 제 등에 진 집을 벼락 치듯 내려놓고 떠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그 해방감이 바로 시인이 발견한 희망의 얼굴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날카로운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 삶은 과연 실재인가, 아니면 관념인가.
사실 "모든 것이 관념일 뿐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이 언어와 생각이 만들어낸 체계임을 뜻한다. 달팽이가 전속력으로 가는 모습에서 '무엇이 있긴 있을 것'이라고 믿는 마음 자체가 이미 관념이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이름표를 통해 바라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를 에워싸는 전통, 관습, 체제,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실체가 없는 공동의 환상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기쁨, 그리고 내일이라는 희망조차 실은 말과 개념, 이미지가 만들어낸 풍경일 뿐이다.
그렇다면 관념을 다 걷어낸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시인이 노래한 희망조차 우리 세계가 만들어낸 관념이라면, 대체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명확하다. 삶 자체가 곧 인생이다. 인생은 '성공'이나 '행복' 같은 관념적인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숨 쉬고, 걷고, 먹고, 존재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인생의 전부다. 관념이라는 무거운 집을 벼락같이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 그것은 어떤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음'이라는 생생한 실재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환상이 관념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환상의 주인이 된다. 등에 진 집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이 내가 만든 이미지임을 안다면, 우리는 그 무게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갈 수 있다. 진짜 인생은 '무엇이 되는 것'에 있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그 삶의 궤적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