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게 나타나는 외형의 변화는 뚜렷한 체중 감소이다. 그것은 다이어트나 식이 조절 등으로 살이 빠진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인다.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걱정스런 마음이 우러나는 법이다.
그 내면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릴 때 의자에 앉아 있는 시아버지를 힐끔 본적이 있다. 원래도 기다랗고 뾰족하게 생긴 얼굴은 생기없이 축 늘어져 더 길어 보였고, 팔이며 바지는 품이 눈에 띄게 헐렁하여 그 속에 감춰진 살빠짐을 속일수 없을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살이 빠졌을까! 드문드문 방문했던 여름 날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나보다.
췌장암 항암 치료제는 힘겹게 선택할 여지가 없다. 두세가지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젬시타빈+아브락산을 하든지 아니면 폴프리녹스를 투여한다. 그런 면에서 굳이 힘들게 지방에서 몇 시간이나 걸려 서울의 유명병원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라면 체력 문제 때문에 가까운 큰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권장하는 편이다.
우리는 누구나 항암제에 대한 지독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는 장면, 어느 날 아침 베개머리맡에 수북히 쌓인 머리카락, 고통에 몸부림치는 끔찍한 통증 등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아온 장면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암세포가 혈관을 침범하지 않아 복부통증이 없었다. 췌장암 환자가 겪는 고통이 말로 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은 터라 우리 가족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보니 환자는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밥상을 받으면 인상을 찌푸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린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젊고 비교적 순한 인상의 의사는 우리가 모든 걸 믿고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눈길로 앞으로의 전투 상황을 말해 주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탄식과 미소가 춤을 추는 나날이 전개될 것이었다. 적당한 희망을 갖되 포기하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젬시타빈과 아브락산을 싣고 암이 마음대로 갉아 먹고 있는 췌장, 간, 폐의 적진을 향해 서서히 나아갔다.